불확실성이 커진 글로벌 경영환경 탓에 삼성전자(005930)의 재고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 1·4분기 반도체·스마트폰·가전제품 재고가 한 차례 출렁인 가운데 최근 미중 무역분쟁 격화로 화웨이발 시장 지각변동이 또다시 예상되기 때문이다.
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1·4분기 반도체 재고는 소폭 줄어든 반면 스마트폰 등 부문과 가전 부문은 크게 늘어났다.
올 1·4분기 삼성전자의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재고는 11조4,688억원으로 지난해 말 11조9,120억원 대비 3.7%가량 줄었다. 코로나19에 따른 반도체 생산 차질 우려로 일부 구매처에서 반도체 재고를 늘렸을 뿐만 아니라 ‘언택트 경제’ 확산에 따른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수요가 증가하며 재고가 감소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재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D램 및 낸드플래시 등 완제품 재고는 크게 줄어든 반면 웨이퍼 등 기초 원재료 재고는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4세대 10나노급(1a) D램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앞두고 1세대 10나노급(1x) 제품 등의 기존 제품 재고는 줄인 대신 첨단 공정 기반의 제품 양산을 위한 원재료는 늘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반도체 ‘제품 및 상품’ 항목을 살펴보면 관련 재고는 지난 2018년 말 2조4,981억원에서 올 1·4분기 1조4,875억원으로 40% 이상 줄어든 반면 ‘원재료 및 저장품’은 8,636억원에서 1조4,074억원으로 63%가량 늘었다.
IT·모바일(IM) 부문의 올 1·4분기 재고는 8조5,869억원으로 직전 분기인 지난해 4·4분기 6조8,862억원에 비해 24.6% 급증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인력이동 제한 및 투자 여력 감소로 5세대(5G)망 구축 시기를 늦춘 것 등이 재고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가전(CE) 부문 역시 재고가 6조675억원으로 지난해 4·4분기 5조6,080억원에 비해 8.1%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판매가 지장을 받고 수요도 줄어든 탓이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면서 화웨이발 시장 격변으로 안정적 재고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화웨이는 최근 2년간 삼성전자의 ‘5대 매출처’에 이름을 올린 주요 고객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화웨이가 미국의 추가 제재안 시행 직전에 D램·낸드플래시·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수급을 빠르게 늘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삼성전자 DS 사업부의 재고 감소에 도움이 된다. 반면 화웨이가 미국 장비를 활용해 만든 반도체를 올 4·4분기부터 사실상 구입하지 못하게 되면 삼성전자 DS 사업부의 매출이 급감해 재고가 다시 늘어날 수 있다. 화웨이에 대한 제재가 IM 사업부에는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로 향후 고성능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탑재된 하이엔드급 스마트폰을 내놓지 못할 경우 삼성전자가 유럽과 남미 등 일부 시장에서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다만 CE 사업부는 도쿄올림픽 연기 등 각종 악재와 글로벌 생산라인 일부 셧다운 등으로 올 한 해 전체에 걸쳐 인상적인 실적 반등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재고관리는 수익성과 직결되는 만큼 생산과 수요에 맞춰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워낙 글로벌 경영환경이 불확실하다 보니 시장지배력이 높은 삼성전자마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코로나19의 확산세와 미중 무역분쟁 전개에 따라 시장 상황이 급변할 수 있어 예측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