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정원은 이미 고3·재수생 등 입학 가능 인원을 초과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 닫는 대학이 속출할 것’이라는 시중의 말이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지방대 중에서도 비거점대는 석박사 학생이 태부족이라 연구개발(R&D)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강원도 강릉에서 천연물을 활용한 신약 개발을 위해 원스톱 연구시설을 갖춰놓고 ‘하루 24시간 연간 365일’ 불을 밝히는 연구실이 있다. 학생들로부터 ‘슈퍼맨’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주성수(54·사진) 국립강릉원주대 생명과학과 교수의 연구실이다.
독자적 ‘온셋’ 플랫폼 구축..천연물 의약품 A~Z까지 R&D
이곳에서는 신약 후보물질 발굴, 약리 활성 스크리닝, 단일물질 분리, 분자구조 결정, 유기합성, 동물실험, 분자생물 시스템 등 모든 연구가 한꺼번에 가능하다. 주 교수가 20여년에 걸쳐 개발한 온셋(ONSET·One-Stop Efficacy Test) 플랫폼 덕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천연물 의약품과 천연물 기반 신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항암질환·면역억제 등 질환별로 스크리닝할 수 있다. 체계적인 정보화 시스템으로 신약 후보물질의 표준화도 구현하고 있다. 주 교수는 “이런 연구실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이나 수도권 대학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라고 뿌듯해했다.
주 교수팀은 알츠하이머·아토피·암·바이러스 등을 퇴치하기 위한 천연물 의약품 후보물질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치매와 항아토피 치료를 위한 3종의 신약 후보물질의 비임상을 수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천연물 합성유도체와 바이오의약품 등 15종의 원천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100여편의 국제논문 게재, 40여건의 국내외 특허, 50여건의 국책연구사업과 용역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2010년 부임 당시 신약 연구지원이 전무해 스스로 모든 것을 개척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점차 독자적인 R&D 시스템을 구축하고 연구 성과가 쏟아지며 학교 평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술회했다.
국가 R&D 기획·평가에서 주류 대학 중심 진행에 의문
이렇게 R&D에만 몰두하던 그가 신약 R&D 벤처기업(휴사이온)을 창업한 동기는 뭘까.
지난 2017년 신약 개발 법인 창업을 위한 정부 R&D 과제에서 지방대 연구자에게 불리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 교수는 “지방대의 한계를 절감하며 창업을 통해 외부 투자유치를 받아 세상을 뒤바꿀만한 R&D로 성공하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지난 20여년간 국책사업과 기업 용역과제 누적 액수가 100억원가량 될 정도로 인정받고 있지만 당시 받은 마음의 상처가 컸다.
고교 사격부 후배인 ‘진종오’ 선수처럼 세계적 R&D 성과 내놓겠다
이런 승부근성은 그가 중고교 시절 사격선수를 하며 길러졌다. 그는 중학교 때 체육교사의 권유로 사격을 시작해 강원사대부고에서 강원도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R&D를 할 때 집중력과 지구력이 중요한데 사격선수였던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올림픽 3회 연속 금메달리스트인 진종오 선수가 고교 후배”라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품었던 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격을 그만두고 학업에 매진해 강원대 생명과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롱아일랜드대에서 의학미생물학으로 석사를 땄다. 이후 귀국해 제1군 군견훈련소 진료병으로 임상경험을 쌓게 된다. 사회에 나가 중외제약에서 신약임상을 담당했고 일본 쥬가이제약에서 통계분석을 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으로 옮겨 글로벌 임상의 한국 임상을 책임졌고 한독아벤티스(한독약품)에서도 신약 개발과 임상연구를 했다.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중앙대에서 약학 박사를 취득했다. 중앙대 약대와 충북대 수의과대에서 각각 연구교수를 하며 현재 개발 중인 다수의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했다. 국립강릉원주대로 옮긴 뒤에는 기업에 다수의 신약 후보물질을 이전했고 2018년 창업 후 자신이 개발했던 특허를 대학에서 패키지로 양도받게 된다.
그는 “천연물 기반 신약 후보물질과 유기합성을 통한 신규 화합물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해 이르면 내년에 ‘타미플루’에 버금갈 정도의 천연물 기반 의약품 비임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천연물에서 유래한 타미플루는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당시 치료제로 위력을 발휘했다. 그는 2015년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성분을 찾아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투유유 중국 중의과학원 교수처럼 족적을 남기고 싶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치매 등 천연물 의약품 후보 물질 비임상 돌입
주 교수는 인삼의 특정 활성물질이 뇌세포에서 신경전달물질을 증가시켜 치매 유발물질을 성공적으로 제거한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밝혀냈다. 공인을 받을 수 있는 임상시험수탁기관(CRO)에 의뢰해 올 4월부터 비임상 연구에 들어갔는데 한 상장사로부터 공동 R&D를 하자며 100억원가량 투자하겠다는 제안도 받았다. 그는 “기존 학계가 인삼의 활성물질만을 분리해 시험한 것보다 자체 연구를 통해 인삼 추출 천연물 상태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입증했다”며 “난치성 질환인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해 빠르면 수년 내 효과적이면서 안전한 천연물 의약품을 탄생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관목에서 추출한 천연물로 항대장암 연구를 하다가 탈모 환자의 양모를 돕는 물질도 발굴했다. 항암물질을 털이 없는 실험용 쥐에게 먹였더니 특이하게도 머리에만 털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주 교수는 “발모와 양모 의약품 후보물질 개발에 들어갔는데 연내 기능성 발모 보조제부터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지난 10여년간 33종의 해양식물을 채집·분석한 결과 ‘톳’이 면역조절 능력이 우수하고 항염·항균 효능이 있어 아토피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도 입증했다. 그는 “톳에서 추출한 천연 활성물질을 대량합성한 천연물 의약품을 개발해 3·4분기 중 비임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경영 노하우 부족으로 우여곡절..수년 내 미국 FDA 천연물 등록 추진
이처럼 R&D에만 치중하다 보니 창업 초기 경영 측면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처음에는 사기꾼이 몰려오다가 점차 엔젤펀드나 벤처캐피털(VC)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요구하는 게 비슷해 깜짝 놀랐다. “외부 투자를 받기 위해 우수한 R&D 파워와 미래가치를 갖고 있어도 학벌 등 일류 스펙이 아니면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아 좌절감을 느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그의 장래성을 믿고 투자해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뚜벅뚜벅 연구를 진전시킬 수 있었고, 이제는 VC들도 관심을 부쩍 보이게 됐다.
주 교수는 치매·아토피·암을 치료하기 위해 신약 후보물질로 개발하고 있는 천연물 의약품 2종과 천연물 기반 신물질 2종을 수년 내 미국식품의약국(FDA) 신규분자물질에 등록 완료한다는 목표다. 2000년 ‘천연물 신약 연구개발촉진법’에 근거해 SK케미칼의 ‘조인스’, 동아에스티의 ‘스티렌’, 녹십자의 ‘신바로’ 등 다수의 천연물 신약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고 시판됐다. 하지만 혼합물의 분자구조와 특성 규명에 애로가 있고 혼합물 간 활성 상관관계가 불명확해 2018년 이후 천연물 신약이라는 용어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FDA의 경우에도 천연물 의약품 허가 숫자는 많지 않지만 매년 허가하는 신약의 3분의1가량이 천연물 기반 신물질에서 나온 것이다. 주 교수는 “천연자원에 관한 원천기술 확보가 중요한 시대가 됐고 FDA도 점차 천연물 유래 신물질이나 합성유도체 승인을 내줘 해외시장도 열릴 것”이라며 “타미플루·아스피린·탁솔 등 천연물 기반 블록버스터급 신약들이 미래 신약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DMZ 신약 메카 희망..교원 창업 패키지 지원 필요
주 교수는 앞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될 것에 대비해 비무장지대(DMZ)를 남북 공동연구특별구역으로 지정하고 천연물 R&D 허브로 만들자는 복안도 갖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18년 남북 과학기술 협력과제 중 하나로 천연물 R&D를 통한 신약·화장품·건강식품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사전에 강원도청을 통해 기획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남북관계가 풀릴 경우 북한의 천연물을 활용한 공동연구를 활성화하고 세계천연물신약포럼을 DMZ에서 개최할 필요가 있다”며 “코로나19 사태로 K방역이 세계적인 롤모델로 떠오른 상황에서 바이오헬스케어 해외진출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는 창업 교원에 대한 기초·응용·개발을 위한 R&D 패키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했다. “교원이 창업해도 승진평가나 국가 R&D 과제 심사에서 가산점도 없고, 대학 산학협력단도 효과적인 지원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판교에 창업한 기업 연구실은 그렇게 못하지만 대학 연구실은 1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데, 만약 대학 연구실에까지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면 연구 흐름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았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66년 강원 춘천 △1989년 강원대 생명과학 학사 △1992년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대(LIU) 의학미생물 석사 △1993~2002년 중외제약, 일본 주가이제약, 글락소스미스클라인, 한독약품 신약개발·임상 담당 △2003년 중앙대 약학 박사 △2004년 중앙대 약학대 연구교수 △2007년 충북대 수의과대학 전임연구교수 △2010년~ 국립강릉원주대 생명과학대학 교수 △2017년 국립강릉원주대 총장 표창 △2018년 BIO KOREA 보건사업 유공자 표창 △2018년 ㈜휴사이온 창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