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현정택의 세상보기] 기본소득 줄 돈 어떻게 마련하나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일회성 아닌 고정소득 되려면

덴마크처럼 세금 크게 올려야

취약계층 지원도 축소 불가피

지금은 이성에 따른 판단 필요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치권에 때아닌 기본소득 논의가 일고 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기본소득을 근본적으로 검토할 때라고 운을 떼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끝장토론을 하자고 맞받았으며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취지를 이해하며 찬반 논의를 환영한다고 했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가장 확실히 주창한 사람은 국가혁명배당금당의 허경영 대표다. 지난 총선에서 18세 이상 국민에게 매달 150만원씩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현재 복지 지출을 줄여 예산을 절약하고 세금을 더 걷어 이를 조달하겠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수치의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 전 국민에게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대신 기존 복지 지출을 정비하겠다는 내용은 기본소득과 부합되는 개념이다.

기본소득제도는 복지국가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국가가 재산이나 지위·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핀란드·스위스 등 유럽의 복지국가에서 도입을 시도했지만 아직 전 세계에서 이를 채택해 실행한 나라는 없다.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통해 세계에 선도적 모범을 보인 대한민국이 기본소득제를 못 하리라는 법은 없다. 조건만 충족한다면 말이다. 그 첫째 조건은 기본 ‘소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생활을 할 수 있는 액수의 돈을 지속해서 줘야 한다는 점이다. 용돈이나 보조금이 아니며 재난지원금 같은 특정 목적을 위한 돈도 아닌 고정소득으로 여겨질 정도가 돼야 한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으니 적어도 그 3분의1인 월 100만원 정도는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스위스에서는 매월 우리 돈 300만원 정도를 기본소득으로 생각해 국민투표에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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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줄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국민 1인당 월 100만원씩 지급하려면 연간 600조원의 돈이 필요하다. 핀란드에서 실험했다는 70만원 수준의 돈을 주려고 해도 400조원이 넘는다. 현재 국세 수입이 300조원 남짓이므로 기본소득을 주려면 세금을 두 배 넘게 거둬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우리나라 조세 부담률이 20% 남짓이므로 번 돈의 거의 절반 정도를 국가에 내는 덴마크 등 유럽 복지국가 수준으로 세금을 팍 올려야 가능하다.

그러나 두 배는커녕 단 몇 퍼센트의 세금을 올리는 일도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현 정부 들어 가까스로 법인세율을 3% 인상하는 등 세제 개편이 있었으나 실제 세수가 대폭 늘어나지는 못했다. 특히 정치적으로 증세는 인기 없는 주제다. 올해 총선에서 부동산을 금기시하는 여당 후보들도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지난 2013년 정부가 복지 재원을 마련하려고 증세를 꾀하다 납세자의 거센 반발로 후퇴한 적도 있다.

셋째, 소득을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자는 기본소득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다양한 복지 지출을 정비해 중복과 비효율성을 줄여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면 실업급여 및 기초생계급여처럼 현재 취약계층에 지급하고 있는 돈이 따로 필요하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 이들에 대한 보호가 현재보다 나빠질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현재 노인·아동·청년 등 계층별로 지급하는 현금성 복지 지출도 기본소득으로 통합해야 하며 이 과정의 이해 상충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정부 재난지원금을 99%의 국민이 달갑게 받았다. 내가 짊어질 빚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기본소득 논의, 이성에 따른 판단이 필요하다.

송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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