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용지변경 힘들걸?" 서울시 어깃장에 송현동 부지 입찰 참여 無

서울시, 4,671억원에 매입, 납부는 2년 뒤

대한항공, 자본 확충 차질로 자본잠식 가능성 커져

조원태 "헐값 매각 안해"…자구안 전면 재수정

대한항공이 보유한 송현동 부지/권욱기자대한항공이 보유한 송현동 부지/권욱기자


한진(002320)그룹의 자구안이 대한항공(003490) 송현동 부지의 매각 실패로 난관에 봉착했다. 서울시에 이어 종로구까지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조성하는 데 적극 지지한다는 의견을 내면서 입찰에 참여한 후보가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송현동 부지의 매각 대금으로 자구책을 이행하려던 계획마저 전면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이 서울시에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부지를 넘기거나 매각 의사를 철회하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 매각주관사 삼정KPMG·삼성증권이 지난 10일 예비입찰을 진행한 결과 한 곳의 후보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장 대한항공은 오는 9월까지 자구안을 통해 2조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만큼 대한항공은 송현동 부지 매각에 공을 들였다. 매물로 내놓은 자산 중 예상 거래 대금이 가장 높았을 뿐 아니라 시장의 관심도 컸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송현동 부지의 매각에 주력하기 위해 이달로 예정돼 있던 왕산레저개발 등의 입찰을 다음 달로 미루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을 진행했다. 당장 현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예상 대금은 최소 6,000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공원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상황은 변했다. 아울러 서울시는 송현동 부지의 보상비로 시세보다 낮은 수준인 4,671억원을 제시하는 한편, 제3자가 인수하더라도 용지변경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서울시가 공익을 이유로 사유재산을 헐값에 사들이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셈이다. 아울러 서울시는 (강제) 수용절차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종로구 역시 지난 9일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으로 만드는 데 적극 지지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잠재적 인수 후보들은 송현동 부지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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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진그룹의 재무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하늘길이 막혀 지난 1·4분기 57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 적자를 냈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2·4분기에도 영업손실 폭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채권단은 1조2,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하며 내년 말까지 2조원의 자본 확충을 요구했다. 하지만 송현동 부지 매각이 어긋나며 채권단 역시 당혹스러운 상태다. 대한항공은 서울시에게 송현동 부지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제값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 자구안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매각 대금 납입 기한도 문제다. 당초 대한항공은 9월 말까지 송현동 부지의 매각을 일단락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2021~2022년에 걸쳐 분할지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자금 수혈이 미뤄져 부채비율 상승에 따라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시는 저금리로 자금을 상환할 금액을 보증해 대출해 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채무인 터라 대한항공의 재무 개선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한항공은 서울시와 협상을 진행하는 한편, 거래 대금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매각 의사를 철회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제값에) 안 팔리면 갖고 있겠다”며 ‘헐값’에는 팔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공개적으로 공원화 계획을 밝히며 일부 후보들은 대한항공에게 부지를 산 뒤 서울시에 되파는 방안에 대해 문의를 하는 등 부지 매각 실패는 예견됐던 일”이라며 “대한항공은 자구안 중 7,000억원에 가까운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기며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박시진·박윤선기자 see1205@sedaily.com

박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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