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창립 70주년을 맞은 한국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경제위기로 격변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1950년 6월 설립 이후 처음 겪는 위기를 마주한 한은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0.5%까지 내리고, 과거에 시도하지 않았던 저신용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까지 예고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위기가 끝나지 않은 만큼 앞으로의 한은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최근의 물가 흐름이 심상치 않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3% 하락해 지난해 9월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한 후 8개월 만에 다시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저조한 물가상승률 흐름에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에 대한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오면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고 가계도 소비를 줄이기 때문에 경제활력은 더 떨어진다. 1990년대 일본이 겪었던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한은의 설립 목적이 ‘물가안정’인 만큼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디플레이션까지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계은행도 최근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에 대해 저성장과 디플레이션 압력에 대비한 통화정책을 펴는 한편 재정지원 대상을 적절히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저금리 등으로 풍부해진 유동성이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는 ‘유동성 함정’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유동성 함정은 중앙은행이 공급한 유동성이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지 않은 현상을 말한다. 올 4월 통화량(M2 기준)은 사상 처음으로 3,000조원을 넘겼다. 문제는 유동성이 증시나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피지수는 2,200선을 육박하며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강남 일대 고가아파트의 호가가 수천만원씩 오르는 등 부동산시장마저 들썩이고 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동성을 오래 풀어도 문제지만 너무 빨리 빨아들여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유동성을 줄이는 적절한 타이밍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