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함께하기의 예술, 오케스트라

강은경 서울시향 대표이사




18세기의 대표적 계몽군주이자 음악 애호가였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제는 “몇 개의 군대 사단을 지휘하는 것보다 하나의 관현악단을 운영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토로한 바 있다. 뛰어난 통치자들에게도 어려운 과제였던 오케스트라 운영이 20세기의 경영 구루 피터 드러커를 통해 “미래의 기업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같을 것”이라는 통찰과 함께 대안적 경영모델로 주목받게 된 것은 구성원들 사이의 깊은 믿음에 기초한 협력적 거버넌스로 최고의 예술성을 구현해왔다는 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해서 단원들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질은 동료 연주자를 믿고 그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개개인의 뛰어난 연주 기량은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100여 명의 개성 강한 연주자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악기처럼 소리를 내야 하기에, 완벽에 가까운 소통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글자 그대로 ‘함께하기의 예술’이며, ‘소통의 예술’인 것이다.


함께하기의 예술인 오케스트라의 특성은 단체의 운영방식에도 반영된다. 세계 오케스트라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은 단원 자치 체제로 유명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경우 연주단원들과 수석지휘자의 채용이 공히 단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빈 필하모닉은 의사결정 과정 전체를 연주자들의 손에 맡겨 상임지휘자 없이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다. 음악감독과 대표이사가 존재하는 미국의 교향악단들도 지휘자 선정 위원회에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장기간 음악감독이 공석이었던 서울시향에서도 단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오스모 벤스케 지휘자를 맞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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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이 단원 선발 과정에 기존 단원들이 관여토록 하는 것은 높은 수준의 앙상블을 보장하고자 함이다. 지휘자 선임, 단원 채용 과정부터 오케스트라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있음을 느낄 때 더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연주가 우러나온다는 측면에서, 오케스트라 조직은 이상적 ‘협치’ 모델의 구현이라고 할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무대 위 거리두기’를 실천하게 되면서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한층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비단 오케스트라뿐이랴.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있는 고난의 시기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서로의 소리에 대한 귀 기울임이야말로 공동체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조용한 신뢰와 경청의 반향은 요란한 대포 소리의 그것보다 훨씬 깊고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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