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5년 안에 서울에서 9억원 이하 아파트는 사라질 것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서민들이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중저가 아파트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3년 새 서울의 6억원 이하 아파트 수는 절반으로 줄었고 4억원 이하 아파트는 3분의1 토막이 났다. 서울에서 9억원 이하 아파트가 자취를 감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서울에서 중저가 아파트의 씨가 마르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집값을 진정시키겠다고 내놓은 정부 대책 탓이 크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마따나 정부는 강남을 비롯한 고가주택 밀집 지역의 아파트값을 잡기 위한 강력한 정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9억원 이상 아파트의 대출 한도를 줄이고 15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대출을 아예 막은 12·16 대책이 대표적이다. 갈 곳을 잃은 돈은 규제가 덜 한 9억원 이하 아파트로, 서울 외곽 지역으로, 수도권으로, 심지어는 지방 읍·면·리까지 흘러내려 갔고, 무섭게 집값을 끌어올렸다. 고가 아파트를 잡겠다는 대책이 궁극적으로 서민들의 실거주용 아파트값을 올려버린 셈이다.
최근 강남 집값이 또다시 꿈틀거리자 정부는 추가 규제 카드를 꺼내 들 심산이다. 새로운 대책에는 지금보다 한층 강화된 대출 규제가 담길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기준을 9억원에서 6억원으로 내리고 대출 전면 금지 기준 가격을 현행 15억원에서 더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새로운 부동산 규제가 나올 때마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 한 쪽으로 풍선효과가 번져온 만큼 이번에는 어느 쪽의 집값이 폭등할지 우려된다.
12·16 대책이 나오고 그다음 달인 올 1월, 대통령은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서민 주거의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강남 아파트 가격을 잡겠다고 내놓은 정책이 오히려 중저가 아파트 시장을 불안하게 해 서민의 ‘내 집 마련’ 문턱을 높이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y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