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와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복원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바람은 북한에 가닿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한 다음 날인 16일 북한은 남북 합의로 비무장화된 지역에 인민군을 재주둔시키고 남쪽을 향해 전단(삐라)을 살포하겠다고 예고했다. 청와대는 북한의 도발적 움직임에 즉각 반응을 내놓는 대신,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말을 아끼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공개보도 형식의 입장문에서 “우리는 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와 대적 관계부서들로부터 북남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하여 전선을 요새화하며 대남 군사적 경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행동 방안을 연구할 데 대한 의견을 접수하였다”고 밝혔다. 북한이 언급한 ‘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는 개성과 금강산 일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북한은 남쪽을 향한 대규모 전단 살포 계획도 시사했다.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연락수단 차단, 군사행동 예고까지 감행한 북한이 이번에는 직접 대남 전단으로 보복하겠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이에 대해 “대남삐라를 보내면 명백하게 판문점 선언 위반”이라며 “남북은 합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 같은 반응은 유화적 대북 메시지를 낸 문 대통령의 기대와는 어긋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은 남과 북 모두가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엄숙한 약속”이라며 전단 살포 등을 포함한 적대 행위를 중단하기로 한 합의 이행을 다시금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고 손짓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도 소통을 단절하고 긴장을 조성하며 과거의 대결시대로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며 “남과 북이 직면한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들은 소통과 협력으로 풀어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대화 국면의 지속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그러나 남북관계는 언제든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격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혀 요동치는 남북관계로 인한 어려움을 전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알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이 함께 돌파구를 찾아 나설 때가 됐다. 더는 여건이 좋아지기만 기다릴 수 없는 시간까지 왔다”며 “한반도 운명의 주인답게 남과 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악화일로인 남북관계 속에서 정치권에서는 대북 특사를 파견해 현재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북특사 파견 등 가능한 모든 카드를 써서 위기 증폭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평양 특사 파견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요청한다면 저도 특사단의 일원으로 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