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수구세력 최악의 달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4주간의 인종차별 항의시위에

트럼프, 강경진압 등으로 대응

대선 패배 가능성 높아질수록

훨씬 더 위험한 행동 나설수도

폴 크루그먼폴 크루그먼



브락스톤 브라지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트럼프는 브라지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노예제 유지를 위해 북부 연방에 맞선 반란군 남부연맹 장군들의 이름을 군 기지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상하고 황당한 일이다. 군 지도부는 반란군 지휘관의 이름이 들어간 부대 명칭을 바꾸는데 기꺼이 동의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완강히 반대한다.


드디어 미국의 백인들조차 흑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불평등을 인정하고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외침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반대를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그보다는 미국 경제계를 따라 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다. 그들은 사회정의를 옹호한다며 값싼 제스처를 취하지만, 근본적인 변화에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자동차경주대회를 주최하는 나스카(NASCAR)도 행사장에서 남부동맹기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돈이 별로 안 드는 조치다. 군 기지 명칭을 바꾸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대단히 저렴하다.

그러나 트럼프에겐 상징적인 공감을 표시할만한 능력조차 없다. 그의 부족한 공감능력에 대한 이해는 트럼프주의와 현대 보수주의 전반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트럼프는 기지명칭 변경에 반대하는 이유를 ‘전승과 승리, 그리고 자유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정말 그럴까. 이들 군 기지는 노예제를 지지한 인물들을 기념한다. 노예제는 자유와는 정반대의 개념 위에 서있다. 게다가 가장 규모가 큰 두 군 기지에는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통해 명성을 얻은 장군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중 한 명이 남군 사령관들 가운데 최악의 장군으로 꼽히는 브라지다. 남북전쟁 당시 그가 이끈 부대는 채터누가 전투에서 대패했다. 존 벨 후드 역시 애틀랜타와 프랭클린에서 북군을 상대로 무모한 공세를 펼치다 대부분의 부하장병들을 잃었다. 이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병력도 내슈빌 전투에서 전멸했다.

트럼프는 분명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한다. 퀸스에서 성장한 그가 남부연맹의 전통에 그토록 애착을 보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대답은 트럼프와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이 보수반동주의자라는 것이다. 정치 이론가인 코리 로빈에 따르면, 보수반동주의자들은 “힘없는 변두리 인물들의 해방 움직임에 저항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바로 이것이 남부연맹의 아이콘이 반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이유다.

메인주의 일부 공화당원들이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리틀 라운드 탑(Little Round Top) 방어전의 주역인 의용군 부대 메인 20연대에 관한 노래를 주가(state ballad)로 만드는데 반대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그들은 ‘우리가 남부보다 낫다’는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어쨌건 남부는 노예제를 지키려들었다.


이들의 반동적 충동은 영향력 있는 ‘저널 오브 폴리티컬 이코노미’의 편집장부터 크로스핏(CrossFit)의 전 최고경영자(CEO)에 이르기까지 특권층에 속한 일부 백인들이 자기파괴적인 격분을 억제하지 못한 채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를 공격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관련기사



반동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지난 4주는 악몽이었다. 제자리를 알아야 할 변두리 인간들이 정의를 부르짖으며 궐기했을 뿐 아니라,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까지 받고 있다. 이건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이런 악몽에 반동주의자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반응 중 하나가 현실부정이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연이어 ‘법과 질서’를 외쳤다. 이렇게 하면 시계 바늘이 다시 1968년으로 돌아가리라고 믿는 듯 했다. 트럼프 신거대책본부는 대통령에게 불리한 CNN 여론조사결과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손질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를 번복하고 사과하라는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또 다른 대응법은 허황한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이다. 우파에게 대규모 군중시위의 배후에는 늘 급진좌파 세력인 앤티파가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전혀 없다. 게다가 트럼프는 경찰의 손에 떠밀려 뒤로 넘어진 75세 노인이 실은 앤티파의 선동가이며, 보행로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모습 역시 ‘설정’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우리 모두가 비디오를 통해 전후상황을 직접 보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트럼프 뿐 아니라 힘을 지닌 우파 인사들이 블랙 라입즈 매터 시위를 공권력의 폭력을 통해 진압하길 원했다는 사실이다. 소수의 기회주의자들이 벌인 약탈행위가 흠이긴 하지만, 압도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된 시위에 군을 투입하라는 요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닿지 않는다. 우파들은 우리가 ‘폭력적인 백치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있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진심으로 믿는 걸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반동주의자들이 현 상황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은 시위가 폭력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트럼프와 탐 카튼과 같은 인물들이 군 병력을 불러들이고 싶어 하는 이유다. 그들은 평화유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게 아니라면 우파들은 무장을 한 우익집단이 미시간 주 의회를 위협했을 때 엄중한 조치를 내렸어야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엄중한 조치를 내리기는커녕 지지를 나타내는 트윗을 날렸다.

아니다, 미국의 보수반동 세력은 법과 질서를 원히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시위대를 박살내기 위해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핑계를 원한다. 최소한 잠시 동안 미국의 수구주의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많은 주지사들과 시장들, 그리고 군까지 폭압적인 시위 진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동주의자들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그들은 여전히 위험하기 그지없는 극단주의 세력이다. 더구나 트럼프의 선거패배 가능성이 커질수록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스러워질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