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은닉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고유정(37)이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사건의 모든 책임을 현남편과 전남편에게 돌리는 등 여전히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특히 전남편 살해는 ‘우발적’이었다며 계획적 살인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고유정은 17일 오후 2시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살인 및 사체손괴, 사체은닉 혐의 관련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계획적 범행 여부를 판단하려는 재판부의 질문에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는 고유정이 전남편인 강모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믹서기나 휴대용 가스버너, 곰탕솥 등을 “왜 사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고유정은 잠시 머뭇거리다 “물건을 한 번에 사는 습관이 있어서 여러 개를 샀다”며 “곰탕솥은 친정어머니가 쓸 수 있다 생각해 구입했고, 믹서기는 (현)남편이 퇴직금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꿈이 있어서 조리를 맡을 경우를 대비해 샀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고유정의 대답을 듣고 난 뒤에도 “물품을 범행에 사용했나요”라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이에 고유정은 격앙된 목소리로 질문을 완강하게 부인하며 “절대 그것들은 범행에 사용되지 않았다”며 “(검거 당시) 차안에 물건이 많았던 것도 내가 차를 (현)남편과 싸운 후 일종의 안식처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재판부는 고유정이 전남편을 살해할 당시 “수박을 자르고 있었는데, 수박이 그대로인 상태로 발견됐다”며 수박이 그대로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고유정은 “전남편이 (성)접촉을 시도해 수박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재차 전남편 살해가 계획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며 전남편이 접촉 시도를 하는 탓에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임을 강조했다.
고유정은 “나는 보수적인 여자여서 그런지 모르겠다. 전 남편의 (성)접촉 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저를 큰 몸으로 제압했고, 그가 집중하는 사이에 손에 잡힌 칼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전남편 탓에 이어 현남편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도 나왔다. 고유정은 “(현)남편이 경찰에 졸피뎀을 가져다 준 뒤 경찰의 초동수사 미흡이 언론에 가려졌다. 험악한 여론이 형성됐다”며 “1심 재판장이 제 변호인을 많이 질책하는 것을 보고 그때 포기했었다. 판사님이 선고 전에 이미 나를 유죄로 생각하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의 감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저의 희망은 이제 앞에 계신 3명의 판사님 뿐”이라면서 “무자비한 언론의 십자가를 지셔야 되지만, 어려우시더라도 부디 용기를 내어주시라”고 읍소했다.
최후진술에서도 일관되게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검사님, 저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닙니다”라고 운을 뗀 뒤 “법원이 다 알고 있는 면접교섭권이 진행되는 동안 나보다 힘이 쎈 사람(전남편)을 흉기로 죽일 계획을 세우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전남편이 원치 않은 (성)접촉을 해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또 의붓아들 사망건도 부정하면서 “집 안에 있던 2명 중 한 명이 범인이라면 상대방(현 남편)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후진술 말미에는 살해된 전 남편과 유족을 향해 “사죄드린다, 죄의 대가를 전부 치르겠다”고 언급했다.
검찰은 이날 고유정에게 1심에 이어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재판부에 “범행 수법이 지나치게 잔혹해 피고인에게 사형만으로는 형이 가벼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점 등을 종합해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고유정은 지난해 5월2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모(37)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살인·사체손괴·은닉)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의붓아들 살해 혐의까지 추가로 기소됐다. 고유정은 전 남편 사건에 앞서 지난해 3월 2일 새벽 충북 청주의 자택에서 잠자던 의붓아들(5)의 뒤통수 부위를 10분가량 강하게 눌러 살해했다고 검찰은 결론 내렸다.
고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은 다음달 15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