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어느 날 저녁, 한 구민체육센터 수영장에 119 구급대원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그 중에는 119안전센터에서 구급출동 업무를 담당하던 A씨도 있었다. 출동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A씨는 신고자에게 호감이 생겼다. 한 번 연락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A씨에게는 소방서에서 받은 출동지령서가 있었다. 119 신고가 접수되면 지령시스템을 통해 신고자의 휴대전화 번호, 집주소 혹은 휴대전화 기지국 주소 등 개인정보가 일선 소방서로 하달된다. 출동팀은 이 출동지령서를 들고 신고 장소로 간다. 지령서는 구급활동 후 바로 폐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지령서에 적혀있던 전화번호로 ‘호감이 있으니 만나보자’는 식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출동 당일이었다. 메시지를 받은 상대방은 A씨의 제안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는 이후 나흘에 걸쳐 계속해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가 접수됐고, 경찰로 이첩됐다.
119에 신고한 이의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일을 담당하지 않으면서 이 정보를 빼돌리고 이용하는 건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A씨는 119안전센터의 개인정보 취급담당자가 아니었다. 그저 신고를 받고 출동할 때 연락을 위해 잠시 전화번호를 받았을 뿐이다.
A씨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신고자의 개인정보는 출동에 필요한 목적 이외에 쓰면 안 되지만, A씨의 행동은 명백히 개인정보를 제공 받은 목적 외의 용도로 쓴 것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박진환 부장판사는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초 약식명령을 통해 정했던 벌금 액수보다 형량이 늘었다. 박 부장판사는 “신고자가 거부했는데도 4일에 걸쳐 지속해서 메시지를 보내는 등 개인정보를 목적 외로 썼다”며 “한편 신고자에게 부담을 준 점 등에 비춰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은 평소 개인정보 파일을 운용하거나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일을 담당하지 않았고 우연히 신고자의 전화번호를 취득한 것도 아니다”라며 “소방서로부터 전화번호를 일시적으로 제공 받은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