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유례없이 제1 야당을 제외하고 국회의장을 선출하고 국회 일부 상임위원장까지 선출하며 힘을 과시하던 176석의 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을 찾아 읍소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상한 방법’까지 강구하라던 3차 추가경정예산안이 야당의 부재 속에 심사조차 되지 않으면서다. 추경이 없으면 경제피해 복구는 힘든데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추경안의 세부 사업이 부실하다고 지적하고 나서면서 독자 단독처리도 어려워졌다. 돌아온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여당의 폭거에 맞서겠다”며 되레 역공에 나섰다.
24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통합당 대표실을 찾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전날 대통령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라”고 한 역대 최대 규모의 3차 추경안(약 35조원) 통과에 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해 추경을 두고 “속이 타들어간다”며 처리를 호소했다. 그는 “52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예산을 하루라도 빨리 집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강원도 절에 있는 주 원내대표를 찾아가 원 구성과 관련한 비공개 회동을 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결국 이날 오후 김 원내대표가 김 위원장을 찾아 추경 통과를 위한 협의를 부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 교역이 줄고 기업들의 매출이 추락하며 우리 경제는 역성장과 고용위기에 몰려 있다. 재정으로 일시적인 경기 충격을 버텨야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역대 최대인 약 23조8,000억원의 빚(국채)을 발행해 만든 3차 추경안에 들어간 상당수 사업들이 예정처로부터 ‘부실’ 또는 ‘효과 불확실’ 판정을 받은 상황이다. 여당이 단독으로 상임위를 구성해 통과시키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는데다 향후 세금을 허투루 쓴 부정행위가 발각될 경우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더해 국회사무처가 추경안에 각 부처가 올해 확정된 예산을 삭감하는 내용이 있어 소관 상임위에서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원내대표가 김 위원장을 찾아 추경 통과에 대한 협조를 당부한 것이다.
통합당은 역공에 나섰다. 회동 이후 분위기가 긍정적이었다는 김 원내대표의 말에 김 위원장은 기자들을 만나 “추경 논의에 참여한다고 했지 (내가) 뭘 긍정적이라고 답했느냐”고 반박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만남은) 일방적인 통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원 구성은) 주 원내대표에게 일임한 상태”라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9일간의 칩거를 마치고 국회 복귀를 선언하며 페이스북에 “말이 좋아 원 구성 협상이지, 횡포와 억지에 불과했다”면서 “집권여당의 폭거에 맞서겠다”며 원 구성 협상의 ‘가시밭길’을 예고했다. 이와 함께 “상임위 몇 개 더 가져오겠다고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윤미향 기부금 유용 의혹, 지난 3년간의 ‘분식평화’와 굴욕적 대북외교에 대한 국정조사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통합당 지도부를 연달아 찾은 것을 명분으로 삼아 단독으로 추경을 처리할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다고 보고 있다. 이날 오전 이해찬 대표는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통합당과 관계없이 이번주 내 국회를 정상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경우 국회의 장기 파행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