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들에 대한 잇따른 갑질 사건이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단지 내 폐쇄회로(CC)TV가 경비원과 입주민 사이의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현행법상 입주민이 CCTV 확인을 요청해도 제3자 동의 또는 경찰 입회 없이는 보여줄 수 없도록 돼 있지만 경비원에 막무가내로 떼쓰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원칙대로 대응한 경비원에게 돌아오는 건 결국 입주민의 폭언과 협박이다. 법과 현실 사이에서 애꿎은 경비원의 고충만 가중되는 셈이다.
지난 8일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A씨는 차량이 긁혔다며 찾아온 주민에게 주차장 CCTV를 보여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경비원 마음대로 CCTV를 보여줄 수 없다고 설명한 뒤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해당 주민은 “어제 근무한 경비원은 보여줬는데 왜 오늘은 안 되냐”며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CCTV 확인은 경찰 입회 하에 가능하다고 재차 설명하자 주민은 “그러면 전날 확인해준 경비원이 법을 어겼으니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A씨의 사례처럼 CCTV를 둘러싸고 입주민 요구와 관련법이 충돌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아파트단지 내에서 차량접촉사고나 절도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입주민이 CCTV 확인을 요청한다고 해서 곧바로 보여줄 수 없도록 돼 있다. 입주민 본인 외에 제3자의 개인정보가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비원은 CCTV에 나오는 제3자의 동의를 일일이 얻거나 경찰을 대동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응대하면 “내가 나오는 영상인데 뭘 그렇게 숨기냐”며 막무가내로 나오는 입주민들이 적지 않다. 심한 경우 폭언이나 폭행을 가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입주민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규정을 어겨가며 CCTV 영상을 보여주는 경비원들도 적지 않다. 서울에서 일하는 60대 경비원 B씨는 “이미 관리사무소까지 찾아오는 경우 대부분은 화가 잔뜩 날 대로 난 사람들”이라며 “이들한테 관리규약이나 관계법령을 얘기해봤자 말이 안 통하니 어쩔 수 있겠냐”고 푸념했다. 경비원들과 업무협조를 해야 할 경찰관들도 정작 관련 법규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아파트 경비원 이모(63)씨는 “간혹 지구대 경찰관들 가운데 관련 규정을 잘못 파악해 경비원이 일하기 귀찮아 경찰에 일을 떠넘긴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는 경비원의 고충을 이해한다면서도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행안부 개인정보보호협력과 관계자는 “고충을 이해하나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이라 어쩔 수 없다”며 “개인정보보호법뿐 아니라 공동주택관리법 등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