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필수적 기술력을 넘어 미지의 상황에 직면해 협력과 문제 해결이 가능하고 이에 적응하며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찾습니다. 바로 창의적이고 지속적인 자율학습 과정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프랑스의 민간 주도 소프트웨어 교육기관인 ‘에콜42’의 소피 비제 교장이 6월 30일과 7월1일 이틀간 ‘포스트 코로나 국가생존전략:과학기술 초격차가 답이다’를 주제로 서울 광장동 그랜드&비스타워커힐서울에서 열리는 ‘서울포럼 2020’ 세션3 ‘창의인재 양성’ 강연자로 나선다. 그는 강연에서 자기주도 학습을 토대로 한 에콜42의 교육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학습자들이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며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컬처엔지니어링’이 미래형 인재 육성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에콜42의 혁신적 교육법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접근법은 많은 기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엔지니어적 해결방식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서울경제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디지털 혁명 속의 새로운 인재상이 요구되는 배경에 대해 “오는 2030년에는 일자리의 85%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라며 “오늘날 기업들이 추구하는 기술들은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제 교장은 디지털 인재를 육성하는 현재 공교육의 한계를 꼬집었다. 그는 “기술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기업은 적응력, 자기조직화, 문제해결력, 자율성, 창의성, 원격협업 능력을 갖춘 신입사원을 채용하기 위해 애쓴다”면서 “하지만 거의 모든 나라의 공교육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인재를 발굴하거나 육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다수 직원이 이러한 역량을 미처 갖지 못했을 수 있다”며 “유치원부터 대학에 이르는 공교육에서 기업이 원하는 소프트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올라갈 사다리 없는 학생들에게 내려온 건 디지털 기술"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인재 교육기관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에콜42에는 교수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 교수의 일방향적인 강의는 없다. 대신 학생들이 독립적 주체가 돼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한다. 비제 교장은 이러한 교육을 ‘피어 투 피어 학습법(Peer to Peer learning)’이라고 소개했다.
에콜42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입학 전부터 동료 간의 상호학습을 시작한다. 에콜42 지원자는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프로젝트를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코딩(Coding)으로 해결한다. 강도 높은 4주간의 합숙 기간이 끝나면 최종 1,000명이 선발된다. 모든 프로그램은 팀 단위로 진행된다. 동료와 협력해 프로젝트를 수행한 뒤에도 동료 간의 평가가 이어진다. 그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학생은 동료 평가 회의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으며 대개 다른 5명의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는다”며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실패하면 주저 없이 다시 시도해 경험을 쌓게 된다”고 말했다.
에콜42, 학생들 스스로 지식 찾고 공유···서로 평가
집단지성 의존 ‘피어 투 피어’ 혁신 교육으로 능력 개발
에콜42의 학습법은 우리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통적 교육 방식과 다르다. 그는 “에콜42에 입학하면 지식은 누군가에게 제공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 나서고 동료들과 협의하며 만들어내야 한다”며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제 교장은 “집단지성에 의존하는 이런 학습 방식은 교사가 설명한 것을 그대로 복사하거나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추구하고 실험하며 설명을 통해 학생들이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다”면서 “피어 투 피어 학습법에 근거한 혁신적 교육방법은 기업의 기대에 맞아떨어진다”고 확신했다. 에콜42 졸업생의 취업률은 100%다.
에콜42의 사례처럼 디지털 교육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단순 노동과 같은 일부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한국에서도 정부의 디지털 일자리 창출 대책인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며 이 같은 논쟁이 떠올랐다. 이에 대해 비제 교장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을 빌려 “모든 산업혁명은 그들이 파괴한 것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면서 “슘페터의 창조파괴론에서 혁신은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터넷의 부상이 미국의 경우 지난 1995~2010년 50만개 이하의 일자리를 없앴지만 25년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1990년 이후 창출된 새로운 일자리의 3분의1에 해당하는 12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비제 교장은 디지털 혁명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디지털 혁명은 일의 육체적인 어려움을 끝낼 수 있게 해줄 것”이라며 “가장 반복적이고 육체적이고 피곤한 일이 로봇화될 것이고 그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혁명이 일자리 확 늘릴것"
대면 방식에 기초한 에콜42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했다. 한국에서 원격수업을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대면 시스템으로 동료와의 학습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충격은 컸지만 오히려 에콜42의 회복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우리는 학생들이 최상의 조건에서 원격 학습을 계속할 수 있도록 180도 전환했다”고 말했다.
그가 예시로 든 대표적 변화는 ‘온라인대중공개강좌(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의 도입이다. 온라인대중공개강좌는 인터넷을 통해 대학의 강의를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에 이수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으로 인터넷이 보급되던 2000년대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교육 환경이 조성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하버드나 릴 대학의 온라인대중공개강좌 제공 등 전례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협력하고 배우며 학생 공동체를 연합하는 방식을 재창조하기 위한 노력이 네트워크 전체에 생겨났다”며 “학습 매개체들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모두 연습·협업, 그리고 미지의 문제에 대한 정면대결을 통한 기술 습득이라는 동일한 결과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딩을 아는 것은 후대에 필수적인 기술"
비제 교장은 에콜42 학생들이 매일같이 연습하는 코딩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코딩을 아는 것은 후대에 필수적인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코딩을 배우고 친숙해지면 직업적 통합에 분명히 자산이 되는 좋은 디지털 문화를 습득할 수 있다”며 “코딩을 배우지 않는 것은 몇 년 전에 영어를 배우지 않은 것처럼 취업 시장에서 당신을 불리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개발자들은 이미 취업 담당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이력서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대로 프랑스는 지난 2017년 코딩을 공교육에 포함시켰다. 영국(2014년), 핀란드(2016년) 등 다른 유럽 국가보다는 다소 늦었다.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코딩 교육과정을 도입했고 지난해부터는 초등학교까지 확장됐다. 그는 “컴퓨터 코딩은 2017년부터 프랑스 학교 프로그램의 일부가 됐다. 코딩 교육은 6세 때부터 시작된다”며 “그러다가 프랑스 학생 과정이 진행되면 예비과정에서 발전해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코딩 교육은 대학교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대학에서 코딩을 배우는 것은 교육과정에 완전히 통합돼 있으며 수학 및 기술 과목의 일부로 배우는 학문”이라며 “학생들은 간단한 프로그램 쓰는 법을 배우며 대학 말기의 시험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연습도 최소한 하나 이상 포함된다”고 밝혔다.
코딩 교육 열풍이 한국을 휩쓸자 최근 에콜42의 자기주도적 교육법을 벤치마킹한 교육기관도 들어섰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손잡고 서울 강남구 개포 디지털혁신파크에 문을 연 ‘이노베이션아카데미(42서울)’다. 무료로 운영되는 만큼 당시 입학 경쟁률은 44대1을 넘었다. 총 250여명을 선발하는 1기 교육생 모집에 1만1,118명이 신청했다.
‘한국형 에콜42’에 대한 그의 기대감은 남다르다. 그는 “6개월은 42서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기에 짧은 시간인데다 코로나 팬데믹이 거의 모든 것을 방해했다”면서도 “우리는 학생들이 얼마나 다른지, 문화적 측면이 운영·진행·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기 위해 42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느 캠퍼스처럼 42서울이 학생 동아리, 행사 및 회의, 노동시장 및 기타 교육 주체와 연계해 멋지고 역동적인 커뮤니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