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에 따라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15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재정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저출산 대책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지난해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아이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0.92명. 세계 최하위다. 2002년 초저출산 시대 (출산율 1.3명 이하)에 돌입한 우리나라의 저출산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다. 올해는 출산율이 0.8명대로 떨어지고 신생아 수도 처음으로 30만명을 밑돌게 된다. 반대로 고령화 속도는 이미 초고령사회(노인 비율 20%)에 진입한 일본보다 더 빠르다. 저출산·고령화는 세대갈등 차원을 넘어 미래 사회 위기론으로 연결된다. 인구학을 전공하고 화제작 ‘정해진 미래(2016)’를 쓴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저출산 원인 규명부터 틀렸다”고 단언했다. 기존 정책이 실패했다면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인구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을 맡게 되는 조 교수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결혼을 미루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출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텐데.
△혼인율은 1~3년의 시차를 두고 출산율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의 혼인 감소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이었다면 앞으로는 경기가 안 좋아 늦췄던 결혼을 아예 포기할 수도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내년 출산율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예상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는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첫해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인구 자연 감소를 당장 걱정해야 할 것은 아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60만~65만명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 해 6만명 감소라면 체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는 2050년부터는 매년 65만명가량 줄어든다. 이 정도라면 위기감을 느낄 것이다.
-교수님이 쓴 ‘정해진 미래’를 보면 저출산·고령화로 부동산 시대는 끝날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펄펄 끓지 않나.
△책은 부동산 문제를 전국적으로 본 것이다. 지금의 문제는 서울 등 수도권이다. 하지만 지방은 빈집이 속출하고 있다. 지방 부자들은 집 두 채, 세 채를 팔고 서울 집을 산다. 다들 서울로 자식을 보내려고 한다. 대학 입학부터 그렇다. 수도권에 자원이 집중되다 보니 인구밀도가 높고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저출산과 수도권 집값 상승의 원인은 매우 흡사하다. 모두 인구밀도와 관련이 있다. 저출산 문제를 풀려면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자원을 두고 경쟁이 심해진다. 경쟁이 심해지면 인간의 생존 본능이 재생산(출산) 본능을 앞서게 된다. 맬서스가 인구는 조절돼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맬서스의 인구론을 일자리와 부동산 문제에 대입해보면 하나같이 그 이유는 인구의 서울 집중으로 귀결된다. 물론 서울 중심의 발전이 우리나라를 초고속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방은 인구밀도가 낮은데도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나.
△지방은 절대적인 자원이 부족하다. 아이를 낳고 키울 환경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인 서울(In Seoul)’ 하지 않나.
-수도권 인구밀도를 낮추자는 말인가.
△그렇다. 높은 인구밀도는 경쟁과열로 청년 세대의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초저출산 문제를 풀려면 청년 세대를 이해해야 한다. 혼인과 출산을 하는 밀레니얼 세대(1985~1996년생)는 과거 어느 세대보다 대학 진학과 취업 전선에서 경쟁이 치열했다. 초저출산 현상은 밀도 높은 사회에 청년들이 적응하는 과정이다. 일종의 사회적 진화라고 할까. 수도권 과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저출산 문제를 풀 수 없다. 저출산 대책에 시동을 건 참여정부 시절 혁신도시를 전국에 흩어놓은 것은 아쉽다. 나눠먹기식 지역 안배를 할 것이 아니라 부산과 대구·광주 등 지방 대도시에 몰아줘 서울에 필적할 각종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 옳았다. 심리적 분산도 중요하다. 왜 18세에 대학을 가야만 하는가. 조금 늦게 가도 되지만 우리 사회는 강력한 연령 규범이 작동한다. 이런 규범들은 지나친 경쟁을 유발한다. 서울로 가야만 한다는 심리를 누그러뜨리는 정책도 요구된다.
-지방 특정지역 몰아주기는 정치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은데.
△지역균형발전 논란은 (초저출산의 재앙이 닥치기 직전인) 1990년대 말에 끝내야 했다. 인구 감소로 시와 군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한데도 건재한 것은 정치 논리 때문이다. 지난해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이대로 가면 수도권 집중도는 2070년 65%, 2100년 88%까지 오른다. 이렇게 되면 출산율이 지금처럼 0.8~0.9명 수준에 머물 것이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지방에 가서 강연하게 되면 내가 이렇게 말한다. ‘당신 자식들은 서울로 보내고 남의 자식만 고향을 지키라는 말인가’라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30년 뒤 미래를 내다보고 인구 이동을 기획해야 한다.
-저출산 대책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가.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복지의 부족이라기보다는 경쟁과 자원 부족 측면이 크다. 하지만 정부는 저출산 원인을 보육복지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 2000년대 들어 때마침 우리나라에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이때 유럽식 보육복지 모델을 받아들였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을 파악한 번지수가 틀렸는데도 역대 정부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복지지출을 늘리다 보니 그게 맞는 방향인 양 인식돼왔다.
-보육복지 지출은 필요한 게 아닌가.
△물론이다. 저출산 복지 정책을 만병통치약으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연말쯤 4차 저출산·고령화대책이 나오는데 정부가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인구학적인 접근이 중요하다. 복지 프레임에 갇혀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참고할 저출산 극복의 성공 사례는 없는가.
△없다고 본다. 일본의 출산율이 다소 올라갔지만 통계적 착시가 있다. 아이를 낳을 엄마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출산율은 어느 정도 유지되겠지만 신생아 수는 감소할 것이다.
-흔히 스웨덴을 모범 국가로 꼽는데.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 복지국가의 토양이 다르고, 인구구조도 다르다. 스웨덴 인구학자들이 ‘(벤치마킹하러) 한국 사람들 이제 그만 오라’고 농담할 정도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스웨덴의 출산율은 1960~1980년대 2명 정도였다가 1990년대 1.5명으로 떨어졌지만 2010년대 들어 1.9명으로 다시 올라섰다. 반면 우리나라는 급격한 저출산을 경험하고 있다. 출산율이 1960년대 6명에서 1970년대 4명, 1980년대 2명, 2000년대 1.3명, 지금은 0.8명이다. 결정적 차이는 연령별 인구분포다. 스웨덴의 인구 피라미드는 긴 통 모양이다. 이는 안정적인 복지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페이고(pay as you go·번 만큼 쓴다)’ 원칙이 작동해야 지속 가능한 복지를 구현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역삼각형이다. 미래 세대가 현세대를 부양할 수 없는 구조다.
-지금의 저출산 복지 대책이 유럽 모델인가.
△그렇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개념은 스웨덴을 벤치마킹했다. 육아·출산 휴직, 보육·출산수당 등이 대표적이다. 공공 어린이집 같은 공적 보육시설 확대는 프랑스 모델이다.
-베트남에 인구 정책을 자문하는데 주로 무엇을 하는가.
△베트남의 관심사는 경제발전이다. 그렇게 하려면 인구구조를 어떻게 최적화할지 자문한다. 베트남은 가족계획을 하다가 이제 풀었다. 우리나라는 산아제한에 성공했지만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를 겪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되지 말라고 조언한다. 베트남 국토는 남북으로 길다. 하노이와 호찌민 두 곳의 인구집중률은 13%쯤 된다. 우리를 반면교사 삼아 인구 분산과 이동을 기획하는 데 자문한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탈이지, 인구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인구는 2030년쯤 정점을 찍고 줄어들 것이다. 다시 늘리기는 불가능할 듯하다. 인구 감소 시대에 잘 적응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인구 감소를 어느 정도 벌충할 수 있다. 인구 감소는 예정된 미래다.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적응하느냐는 인구절벽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인구가 좀 적더라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운사이징 연착륙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년연장 문제는 뜨거운 감자인데.
△정년을 연장하려고 한다면 빨리 공론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크다. 정년연장은 차기 대선에서 이슈화할 공산이 크다. 지금부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정년연장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연공서열 파괴다. 정년연장은 노인 연령 상향 조정, 국민연금 개혁과 분리할 수 없다. 한꺼번에 추진해야 한다.
-생산인구 감소로 이민을 활성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동의하는가.
△인구가 몇 년 내 확 줄지는 않는다. 2050년부터 내국인 인구가 급감할 것이기 때문에 2040년부터 준비해도 늦지 않는다.
-앞으로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 정치적 영향력이 작은 청년보다는 노인 정책이 우선되지 않을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2035년쯤 되면 여성 인구 3명당 1명이 노인이다. 해마다 90만~100만명씩 태어난 세대다. 10여년 후 2030세대가 될 지금의 10대는 연간 40만명 태어났다. 인구 크기에서 워낙 차이가 난다. 만약 젊은 층의 정치적 요구가 좌절된다면 미래 세대는 해외로 탈출구를 찾을 것이다.
/권구찬선임기자 chans@sedaily.com
He is...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에서 인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타주립대 조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5년 베트남 인구 및 가족계획국의 초청으로 1년 동안 하노이에 거주하면서 인구 정책 자문을 했다. ‘정해진 미래’는 2016년 9월 초판을 발행한 후 16쇄를 찍을 만큼 베스트셀러로 주목받고 있다. 저서로 ‘정해진 미래시장의 기회(2018)’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2019·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