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내년 4월7일 치러지는 재보궐선거는 판이 더욱 커지게 됐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은 물론 수도 서울의 행정을 책임질 시장을 재보선을 통해 선출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나 대권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서울시장의 정치적 이점과 재보궐 및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서울시장직을 둘러싼 정치권의 눈치싸움은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4월 보궐선거를 준비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정강정책 개정특위 세미나에서 “갑작스러운 사태가 나서 말하는 데 내년 4월이 되면 큰 선거를 두세 군데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부산시장 보궐선거, 경우에 따라서 또 다른 선거를 해야 한다면 대통령 선거에 버금가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021년 4·7재보선에서는 앞서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직원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며 자진사퇴하면서 비게 된 부산시장직을 맡을 인물도 결정된다. 이외에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현재 재판을 받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경기도와 경남 도지사를 새로 뽑아야 할 수도 있다. 이 지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최종심을 앞두고 있는데 2심에서는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3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김 지사는 드루킹 대선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와 경상남도 도지사 선거까지 치르게 될 경우 전체 유권자(4,399만명)의 절반 이상(2, 530만여명)이 새 자치단체장을 선출해야 한다.
4월 재보선이 2022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민심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선 전초전’의 성격을 띠는 가운데 정치권은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정치인 개인이나 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개인 입장에서는 당선 즉시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데다 성공적으로 시정 업무를 수행하면 대권주자 중에서도 ‘유력’ 대권주자가 될 수 있다. 수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 입장에서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면 잠재적 유력 대권주자를 확보하게 된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과 수권 정당이 되고자 하는 정당 모두가 서울시장직은 포기하기 힘든 자리라는 의미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서울시장 후보 하마평이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2011년 야권 후보단일화 경선과 2018년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패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우선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우상호 의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주민 의원 등도 후보로 꼽힌다. 통합당에서는 대선 잠룡으로 분류되는 홍정욱 전 의원을 비롯해 권영세 의원, 박진 의원, 김세연 전 의원 등이 물망에 오른다.
변수는 고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궐위로 개인과 정당 모두 고려해야 할 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우선 당장 차기 대권을 노리는 잠룡은 이번 재보선에 나서기가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은 90일 전인 12월9일까지는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서울시장이 된다손 치더라도 직을 유지할 기간이 8개월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재보선으로 1년2개월 임기의 서울시장을 뽑게 된 상황에서 유권자가 8개월 하고 말겠다는 후보에 표를 던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설 후보는 차기가 아닌 차차기 이후의 대통령 선거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다만 한편에서는 1년 넘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민주당 의원을 피해 차차기를 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보선으로 서울시장이 된 후 2022년 지방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하면 2027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잠룡으로 손꼽혔던 고 박 시장의 사망으로 2022년 여권의 대권 구도도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낙연 독주 체제에서 이낙연·이재명 2강 체제 구도로 바뀌는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서경펠로(자문단)는 이 지사가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이 의원보다 이 지사에게 다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이 의원은 ‘안정감’, 이 지사는 ‘에너지’로 뚜렷하게 대비가 된다”며 “이 의원보다는 이 지사가 여러모로 장점이 겹친다. 전반적으로 앞으로 치고 나갈 힘은 이 지사에게 있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의원과 이 지사 둘 다 ‘비문(비문재인)’이라 고 박 시장 공백이 누구에게 크게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 지사에게 유리할 것 같다”며 “진보적 노선 등 공통점이 많다. 고 박 시장의 지지율이 높지는 않지만 (이 지사가) 지지층을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임지훈·박진용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