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뒷북경제]한국 '세계 첨단산업 공장' 선언한 까닭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대응할 ‘소부장 2.0’ 전략

日 보복·코로나 이후 대비해 ‘제조업 자립화’ 가속

바이오·반도체·미래차 2조 투자·1,100억 펀드 조성

생산거점 다변화 없인 고립될 수도




“한국을 각국의 첨단산업이 모여드는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겠다”

정부가 지난 9일 이 같은 야심 찬 계획을 담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2.0’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소부장’ 대책은 지난해 7월 기습적으로 시작된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정부가 내놓은 국내 제조업 기반 강화 방안으로, 이를 업그레이드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입니다. 애초 ‘탈(脫)일본’으로 시작된 제조업 강화 대책을 발판 삼아 첨단 기술력도 함께 높이겠다는 목적인데요.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한 번 살펴보시죠.


韓, 첨단산업 ‘메카’로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공급 안정화 대상 품목을 기존 100개에서 바이오, 환경·에너지, 소프트웨어 등 신산업을 포함한 ‘338개+α’로 늘렸습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소재 강국’인 일본이 갑자기 소재 수출을 막으면서 국내 제조업체가 ‘공급 위기’를 겪자 품목 100개를 정해 수입처 다변화 및 자체 공급능력 향상을 추진해왔는데, 이번 대책을 통해 338개로 늘리겠다는 겁니다. 그것도 신산업을 포함해서 말이죠. 지금까지 우리가 ‘수비’를 하는 차원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공급 여력과 기술력을 늘려 한국을 ‘첨단 소부장’ 수출국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입니다.

또 오는 2022년까지 차세대 전략기술을 확보하는 데 5조원 이상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바이오·시스템반도체·미래차 등 ‘빅3’에는 내년 2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집니다. 기술개발에는 정부 차원의 ‘패키지 지원’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다음달 중 ‘소부장 연구개발(R&D) 고도화 방안’을 수립하고 경쟁력위원회·기술특위·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기로 했습니다. 차세대 유망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관리하고 R&D 세액공제 대상에 추가하는 한편 1,100억원 규모의 소부장 벤처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됩니다.


외국인 투자와 기업의 국내 복귀(유턴) 역시 첨단분야에 초점을 맞춘다고 합니다. 이달 말께 세법 개정을 통해 첨단분야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범위를 넓히고, 첨단산업 유치 및 유턴에 소요되는 보조금과 인프라에 5년간 약 1조5,000억원을 지원하는 형태죠. 기존 산업단지 같은 경제특구를 첨단투자지구로 지정해 외국인 투자와 유턴을 집중하겠다는 계획도 담겨 있습니다. ‘모든 것은 첨단으로’라는 말로 요약해볼 수 있겠습니다.

관련기사



1015A05 소부장2.0전략수정


文 대통령 “韓 제조업 재도약해야”

‘소부장’의 브랜드가 달렸지만, 사실 소부장 2.0 전략은 한국판 ‘글로벌 공급망(GVC) 재편’ 계획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각국은 수입·수출길이 막혀 부품 조달이 휘청거리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공장이 셧다운되는 사례도 빈번했죠.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부품이 끊기는 바람에 현대, 기아차 등 국내 기업이 자동차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입니다. 따라서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독일 등 나라를 가리지 않고 GVC 재편 전략에 매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 대책을 서둘러 내놓기도 했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9일 SK하이닉스의 이천 반도체 공장을 찾아 이런 점을 강조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기회로 삼으려면, 스스로 글로벌 첨단 소재·부품·장비 강국으로 도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미중 패권 갈등과 자국 이기주의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 ‘소부장’ 자립화를 통한 우리 제조업의 재도약을 주문한 것입니다. 이어 “첨단산업 유치와 유턴으로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이 되겠다”면서 “반도체와 바이오·미래차·수소·이차전지 같은 신산업에 집중해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전자·자동차·패션 같은 중요도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국내 유턴을 촉진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를 방문해 공장 시찰실에서 불화수소 세척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를 방문해 공장 시찰실에서 불화수소 세척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연합뉴스


생산거점 다변화 없인 고립될 수도

전문가들은 그러나 ‘자립화’에 매몰된 GVC 재편 전략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여러 국가에 걸친, 또는 한 국가에 편중된 공급망을 수정·보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잘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각국은 유턴 등 공급망 내재화뿐 아니라 인근 국가나 지역으로 생산거점을 다변화하는 위험분산 대책도 동시에 이행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이번 대책에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신남·북방 국가로 생산거점을 다변화하는 ‘차이나+1’ 대책을 담았지만 사실상 비중은 미미했습니다. 국제통상학회장을 지낸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적 이득을 명분으로 한 지역 블록형 공급망 추구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조양준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