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11일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히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 대표는 박 전 시장이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뒤 사망한 것을 겨냥해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안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고인의 죽음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도 “별도의 조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참담하고 불행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또 “공무상 사망이 아닌데도 서울특별시 5일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지금 이 나라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고위 공직자들의 인식과 처신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할 때”라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박 시장 장례를 서울시가 구성한 장례위원회가 주관하는 장례인 ‘서울특별시장’으로, 또 5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성추행 의혹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력 정치인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르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안철수 대표의 조문 거부는 지난 2011년에 맺은 두 사람의 인연을 감안할 때 다소 이례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지지율 5%에 불과한 박원순 변호사에게 시장 후보를 양보했다. 이후 박 시장은 안철수 당시 교수의 지지를 등에 없고 나경원 후보를 꺾고 화려하게 서울시장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두 사람의 좋은 인연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서울시장 당선 이후 2년 후인 지난 2013년 5월 인터뷰에서 안철수 의원에 대해 “정치적 빚을 갚을 수 있다면 갚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2016년에는 ‘2011년 단일화로 안 전 대표에 대한 부채감이 있을듯 한데 도와달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개인적 관계와 공적 관계는 분명 다른 일이다. 우리사회의 미래가 달린 문제에서 공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싸잡아 비판한 적이 있다. 그는 과거 서울시장 후보와 대통령 후보를 양보했던 일을 상기하며 “양보를 받기 전에는 간이라도 빼줄 듯이 했지만 막상 양보를 받자 끊임없이 지원만을 요구했지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고 오히려 실패의 책임을 제게 덮어씌웠다”고 정면으로 비판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낡은 기성정치에 결코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안 대표는 “9년 전 서울시장을 양보했을 때, 그 다음해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를 양보했을 때, 각각의 이유는 달랐지만 저는 세상의 선의와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믿었다”면서 “그러나 기성 정치권은 저를 ‘철수정치’라고 조롱하고 유약하다고 비웃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때는 정말 제가 이 쪽 세상과 사람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고 후회했다.
안 대표의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조문 거부는 어쩌면 의외일 수도 있다. 정치적 행보가 달랐을 뿐 두 사람 간의 신뢰 관계는 여전히 가슴속 깊이 남아있을 법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의 고(故) 박원순 시장 조문 거부는 박 시장이 생전에 인터뷰에 한 “개인적 관계와 공적 관계는 분명 다른 일이다. 우리사회의 미래가 달린 문제에서 공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대표의 조문거부는 고(故) 박원순 시장과의 악연 때문이 아니라 ‘박원순 지지세력’과 거리를 두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하고 있다. 박 시장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하면서 박 시장이 정치적인 인물로 성장할 때 도움을 준 상황에서 자신은 박 시장과 지지세력에게 아무런 정치적 도움을 받은 적이 없는 점도 이 같은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철수 대표의 경우 박원순 시장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손해를 감수했다”면서 “하지만 돌려받은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인 안 대표 입장에서 박 시장을 조문하면서 추모까지 하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