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포드, 아이아코카 전격 해임

최악 경영실수와 당연한 응징 사이







1978년 7월13일 오후3시께 헨리 포드 2세가 리 아이아코카 포드자동차 회장을 불렀다. ‘당신이 가끔 누군가를 싫어했다지?’라는 말로 시작된 해임 통고였다. 낌새도 몰랐던 아이아코카는 배신감에 떨었다. ‘21세에 엔지니어로 입사해 홍보와 영업, 신제품 기획에서 32년간 공헌한 대가가 이것인가?!’ 훗날 자서전에 그는 ‘오너를 죽이고 싶었다’고 썼다. 더욱 분노하게 된 것은 의도적이고 공개적인 모욕. 포드자동차는 퇴임하는 임원에게 3개월 동안 준비기간을 줬으나 최고경영자를 8년 지낸 그에게는 창고에 책상 하나만 달랑 내줬다.


만 54세 생일에 창고 사무실을 배정받았던 그는 바로 회사를 떠났다. 경영대학원장에서 항공사 사장까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으나 조건이 가장 나쁜 회사를 골랐다. 회생 불가능으로 평가받은 크라이슬러사를 택한 것. 최초의 유선형 자동차를 선보이는 등 ‘세계 빅 3’로 군림하던 크라이슬러에 와보니 실상은 더 나빴다. 독립된 소영주처럼 행동하던 부사장 35명 중 33명을 포함해 종업원 1만5,000명을 내보냈다. 노조와 협상에 앞서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책정하는 배수진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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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정성을 들인 분야는 두 가지. 첫째는 구제 금융. ‘위엄 있게 죽게 놔두라’는 언론 보도 속에서 행정부와 의회를 설득, 1980년 1월 정부의 지급보증 15억달러를 받아냈다. 민간의 신규 대출과 종업원 급여 삭감분을 포함해 35억1,750만달러의 구제금융을 확보한 아이아코카는 품질 고급화를 위한 사람 확보에 나섰다. 감원 태풍 속에서도 품질 관리 라인은 오히려 늘렸다. 마침 최초의 미니밴과 저연비 승용차 덕분에 만성적자가 흑자로 돌아섰다. 해고했던 직원들도 다시 불러들였다. 해고 5주년인 1982년 7월13일에는 ‘대출 전액을 7년 앞당겨 갚겠다’고 밝혔다.

포드 2세의 해고는 ‘잘못된 인사 관리의 표본’으로 꼽히지만 이론도 없지 않다. ‘대주주가 치매에 걸렸다’며 ‘회사를 차지하려던 아이아코카가 선제공격을 당한 것’이라는 증언도 있다. 포드 2세 또한 경영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포드사를 말아먹던 전문경영인을 20대 중반에 몰아내고 회사를 되살린 일화로 유명하다. 창업주 헨리 포드 1세의 손자인 포드 2세로서는 당연한 대응이었다는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됐다. 주목할 것은 포드사도 이전만 못하고 크라이슬러 역시 독일을 거쳐 이탈리아 자본에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증오나 신화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지속적 성장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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