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 A씨를 두고 피해 호소인·피해 고소인에 이어 급기야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피해자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은 17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을 위해서라도 미래통합당은 뒤로 빠지십시오. 정치권은 뒤로 물러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봅시다”라고 밝혔다. 통합당이 박 시장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자 이를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이라는 표현은 김 전 의원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
앞서 민주당에서는 비서 A씨를 어떻게 지칭할 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15일 박 전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문제와 관련 “피해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 다시 한번 통절한 사과를 말씀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표현은 “피해자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시민단체인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16일 “공개된 장소에서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 표현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법세련은 “‘피해호소인’이란 표현은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피해 사실을 주장할 뿐,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비서 A씨를 “관련법에 따라 (성폭력) 피해자라고 본다”고 16일 밝혔다.
또 다른 당권주자인 이낙연 의원은 ‘피해 고소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의원은 지난 15일 “피해 고소인과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고소인과 가족의 안전이 지켜지고 일상이 회복되도록, 경찰과 서울시 등이 책임 있게 대처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해당 표현이 적절한지 묻는 기자들의 질문은 “더 설명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고 일축했다. 비서 A씨가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는 점에서 ‘호소’라는 표현보다 법적 객관성을 띈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에 대해 “박 시장의 사망으로 사실관계를 가릴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라고 지칭할 수 없다”라고 설명한다. 당 핵심 관계자는 “그러면 피해호소인 말고 어떤 표현이 좋겠느냐”며 “박 시장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돼 피해자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했다. 민주당 당헌 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추행 사실을 인정할 경우 당헌에 발목 잡혀 서울시장 후보를 공천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김 최고위원은 ‘피해자’라는 표현을 쓰지 못 하는 당을 겨냥해 “지금부터는 피해 호소인이 아닌 피해자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당은 이번 사건에 대한 일련의 대처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책임 공당으로서, 그리고 약자의 보호를 주요한 가치로 삼는 정당으로서 고인(박 시장)의 추모와 피해자 보호 사이에서 경중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피해자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당에서는 진상규명을 포함 피해자 보호에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