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술 취한척 뽀뽀·허리감기 등 일상적 성희롱...공직사회 性인식 위험하다

시스템 갖췄어도 민간보다 심해

"폐쇄적 문화·관리자 인식 변해야"

김재련 변호사(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김재련 변호사(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회식 때 노래방 가서 허리감기’ ‘술 취한 척 뽀뽀하기’ ‘바닥 짚는 척하며 다리 만지기’.

지난 16일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낸 입장문에 적혀 있던 서울시 공무원들의 성희롱 피해 사례들이다. 이들 단체는 “서울시에서 일상적으로 성희롱, 성추행을 경험했다는 제보는 비단 이번 사안(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직사회의 성(性) 인식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선도적인 젠더 정책을 펼쳐왔던 서울시마저 ‘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공무원들이 방조했다’는 주장들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공직사회 특유의 폐쇄적 문화와 고위 관리자들의 성 인식 개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발표한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성희롱 피해는 민간기업보다 심각하다. 공공기관에서 2015년부터 3년간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6.6%로 민간기업(6.5%)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공공기관 가운데에서도 성희롱 경험 비율이 단연 높은 곳은 지방자치단체(28.1%)였다. 국가기관, 초중고교, 대학 종사자들은 각각 13.9%, 10.9%, 20%가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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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은 공공기관일수록 성희롱·성추행 처리절차와 징계 규정이 명확하다는 점에 비춰보면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99%의 공공기관이 성희롱 상담 창구를 구성하고 예방지침을 마련했다. 공무원이 성희롱을 저지르면 최대 파면까지 당할 수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1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번 사건을 통해 (서울시의 인권 보호) 시스템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직사회 전반의 문화와 고위공직자의 성 인식 개선에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15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성희롱 은폐는 조직사회의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며 “공직은 진입이 어렵고 근속년수가 길고 이동범위가 넓지 않아 인맥과 평판이 업무와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직에서 문제를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되면 이후 어떤 형태로 불이익이 돌아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인용된 성희롱 처리 담당 공무원의 발언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이 공무원은 “과장들은 (예방) 교육 안 받는다. 5급 이상 관리직 교육이 안 되면 절대 달라질 수가 없다”고 짚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직문화는 절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성희롱 사건 발생 시 지금보다 몇 배 큰 불이익을 줘서라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사태 이후 고위공직자, 정치인들의 미진한 성인지 감수성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서울지역 25개 구청장으로 구성된 서울시 구청장협의회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사적 영역’이라 일컬어 논란이 됐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성추행 논란에 대한 당의 대응’을 묻는 기자에게 욕설을 뱉었다가 비판을 받자 뒤늦게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구 교수는 ”조직문화개선은 형식적인 교육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성희롱·성추행 때 지금보다 몇 배는 큰 불이익을 줘서라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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