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별종? 상관없어, 이게 바로 나니까" 세상 편견 짓밟는 '그들의 하이힐'

드랙퀸(여장남자) 전면 내세운 뮤지컬 잇따라

뮤지컬 제이미·킹키부츠·렌트 속 당당한 캐릭터

힐 신은 男 배우·편견 뺨 때리는 당당함에 환호

“나는 한정판” “너 자신이 되라” 메시지도 울림

다양성 중시 사회서 공감 사며 무대 전면에

세상 편견 쿨하게 지르밟을 그녀, 아니 그들이 온다!

드랙퀸(여장 남자)을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 대작들이 잇따라 개막하며 올여름 무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유쾌하게 받아치며 “이게 바로 나”라고 노래한다. 남들 시선에 굴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당당함은 그 어떤 공격과 비난으로도 뚫을 수 없는 갑옷이다. 관객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배우들에 한 번, 그들이 올라탄 아찔한 하이힐에 또 한 번, 마지막으로 ‘타인 아닌 너 자신으로 살라’는 메시지에 마음을 빼앗긴다.

뮤지컬 ‘제이미’에서 주인공 제이미 뉴를 연기하는 조권/사진=쇼노트뮤지컬 ‘제이미’에서 주인공 제이미 뉴를 연기하는 조권/사진=쇼노트



“리미티드 에디션 아찔하니 도도한 이 존재감을 어쩌겠어.” 17세 고등학생 제이미 뉴의 장래희망은 드랙퀸이다. 현실적인 꿈을 꾸라는 선생님, ‘굴착기 기사가 되라’는 적성검사 결과 따윈 귀에도 눈에도 안 들어온다. 졸업을 앞두고 장래는 물론 당장 오늘도 불확실한 친구들과 달리, 제이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가장 자신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생일 선물로 아들이 평소 갖고 싶어 하던 하이힐을 선물해주는 엄마 마가렛과 “네 인생 산다는데 남의 허락이 왜 필요해?”라며 ‘찐’ 조언을 날려주는 이모 레이는 든든한 조력자다. 이들이 있기에 제이미는 주변의 조롱과 아버지의 부정을 극복하고 “나는 한정판(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뮤지컬 ‘제이미’는 실존 인물인 제이미 캠벨의 실화를 바탕으로 2017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지난 4일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한국 공연은 영국 외 국가에서 선보이는 세계 첫 공연으로 조권·신주협·뉴이스트 렌·아스트로 MJ가 제미이 역을 맡았다. 하이힐을 신고 선보이는 관능적인 보깅(패션모델 같은 걸음걸이나 몸짓을 흉내 낸 디스코 댄스)은 그저 현란한 볼거리가 아닌 “이게 바로 나”라는 제이미의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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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킹키부츠’ 2018년 시즌에서 롤라 역을 맡은 배우 최재림(왼쪽)과 찰리 역의 이석훈/사진=CJ ENM뮤지컬 ‘킹키부츠’ 2018년 시즌에서 롤라 역을 맡은 배우 최재림(왼쪽)과 찰리 역의 이석훈/사진=CJ ENM


“너 자신이 되라. 타인은 차고 넘치니까.” 할 말 하는 사랑스러운 드랙퀸 롤라도 다음달 더 아찔해진 힐을 신고 돌아온다. 8월 21일 블루스퀘어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킹키부츠’는 망해가는 구두공장을 물려받은 청년 찰리가 롤라를 만나 드랙퀸용 부츠를 만들며 재기를 꾀하는 과정을 그린다. 롤라와 찰리, 둘은 묘하게 닮았다. 각각 ‘권투 선수’와 ‘가업 승계’라는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쳐 괴로워했던 두 사람이다. 그러나 둘의 선택은 달랐다. 권투 글러브보다 예쁜 옷, 멋진 화장, 섹시한 힐이 좋았던 남자 사이먼은 기꺼이 롤라로서의 삶을 택했지만, 찰리는 ‘내가 살고 싶은 삶’보다 주변인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휩쓸려왔다. 그런 찰리에게, 그리고 어쩌면 찰리와 비슷한 삶을 사는 객석의 많은 관객들에게 롤라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제이미와 마찬가지로 실화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다. 2014년 국내 초연 후 이번이 네 번째 시즌으로 강홍석·박은태·최재림이 롤라 역을 맡았다.

뮤지컬 ‘렌트’에서 드랙퀸 ‘엔젤’ 역을 맡은 배우 김호영(왼쪽)/사진=신시컴퍼니뮤지컬 ‘렌트’에서 드랙퀸 ‘엔젤’ 역을 맡은 배우 김호영(왼쪽)/사진=신시컴퍼니


이들에 앞서 무대에 오른 뮤지컬 ‘렌트’의 ‘엔젤’도 있다. 렌트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린 작품으로, 1996년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고 한국에서는 2000년 첫선을 보였다.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 약물중독자, 무정부주의자 등 범상치 않은 캐릭터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드랙퀸 엔젤은 그 이름에 걸맞게 주변과 자신을 챙기며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한다. 길 가다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에게 엔젤은 말한다. “난 너보다 훨씬 남자답고, 니 여자 친구보다 훨씬 섹시해, 꺼져!” 자본주의의 상징 뉴욕에서 가난과 질병,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불안정이 일상이 된 주인공들 사이에서 늘 당당하고 사랑 앞에 주저하지 않는 이는 엔젤 뿐이다. 오는 28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이번 시즌에는 김호영·김지휘가 연기한다.

개성 강한 이들 캐릭터의 부상은 시대의 변화와 뮤지컬 산업의 마케팅 전략이 맞물려진 결과다. 사람들의 인식이 다양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한때 금기시됐던 이들 소재가 적극 활용되게 됐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과거 드랙퀸이나 동성애자 등 소수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그들 내부에서만 소비되곤 했지만, 다양성이 강조되는 시대상이 반영되며 이들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1997년 드랙퀸을 소재로 한 호주 영화 ‘프리실라’(뮤지컬로도 제작됨)가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드랙퀸도 대중에 ‘먹힌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점도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색깔 강한 캐릭터와 주목도가 중요한 쇼 뮤지컬 특성상 드랙퀸이 등장하는 작품들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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