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 ‘2강(强)’으로 분류되는 TSMC와 삼성전자(005930)가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해 ‘투자 확대’라는 공격적 카드를 꺼내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클라우드 시장 성장 및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화웨이 제재가 되레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2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올 2·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설비투자 예상액을 160억~170억달러 규모로 제시했다. 올 초 투자 예상액이 150억~160억달러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예상 투자 규모가 몇 달새 10억달러가량 늘었다.
TSMC는 지난해부터 반도체 선단공정의 필수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을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18년 105억달러에 불과했던 설비투자 규모가 지난해는 149억달러, 올해는 최대 17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TSMC의 올 2·4분기 매출과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 81% 늘어 투자 여력도 충분하다. 업계에서는 올 2·4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코로나19와 미중 무역분쟁이 TSMC에 호재가 됐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TSMC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오는 9월부터 화웨이에 반도체 납품을 할 수 없게 되지만 이 때문에 올 2·4분기 화웨이발 주문이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또 클라우드 업체들이 사용하는 고성능컴퓨팅(HPC)용 반도체도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소비 확산으로 수요가 늘었다. TSMC의 올 2·4분기 HPC 매출은 직전분기 대비 12% 늘어나 전체 매출의 33%를 차지했다.
TSMC는 향후 7나노 이하의 초미세공정 기반 제품 시장 확대 및 5세대(5G)용 스마트용 반도체 수요 증가 등에 대응해 공격적 투자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화웨이향 제품 출하 중단으로 매출은 꺾일 것으로 전망되지만 선단 공정 기반 제품 확대로 수익률은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삼성전자는 EUV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의 관련 제품 물량을 올 2·4분기에 싹쓸이하며 TSMC와의 간격을 좁힐 방침이다. ASML의 올 2·4분기 지역별 매출을 살펴보면 한국이 직전분기 대비 9%포인트 늘어난 38%를 기록하는 등 EUV 장비 확보에 보다 적극적인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올 1·4분기 반도체 부문에 전년 동기 대비 66% 늘어난 6조원을 투자했으며 올 한 해 이 같은 공격적 투자 기조를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또 ‘핀펫’ 구조 기반의 반도체에 이어 ‘게이트올어라운드(GAA)펫’ ‘멀티브리지채널(MBC)펫’ 구조의 반도체 생산 로드맵을 잇따라 공개하며 선단 공정에서 TSMC를 앞서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TSMC 또한 오는 2023년께 GAA펫 구조를 적용한 2나노 제품 양산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삼성전자 선단공정의 우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내년께 3나노 기반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2나노 관련 제품 로드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단공정에서는 TSMC와 삼성전자 간의 기술 차이가 별로 없지만 설계기술이나 운영 노하우 등은 여전히 TSMC가 압도적”이라며 “다만 삼성이 엘피다나 도시바 등 일본 업체를 제치고 메모리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한 저력이 있는 만큼 파운드리에서도 어떤 승부수를 던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