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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아는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그렇게 모두 어른이 된다




어버이날이 낀 주말, 운전해 집에 내려가던 중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이모들이 단체 카톡방에 사촌동생들이 준 꽃이며 선물을 자꾸만 올려대는 통에 ‘나가기’를 눌렀다고. 너희들은 어떻게 엄마한테 달랑 이모티콘만 보내고 넘어가려 하냐고….

커다란 꽃바구니가 조수석에 있기는 했지만, 쑥스러워 헛웃음만 지었다. 집에 도착해 식탁 위해 슬쩍 꽃바구니를 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유 이게 뭐여” 하며 엄마는 꽃바구니를 요리조리 돌려봤다. 피식 웃었다. 그런데 엄마가 이렇게 꽃을 좋아했었나?


30년이 훌쩍 넘도록 꽃다발은 엄마가 주는 것이었다. 초중고 대학까지 졸업식마다. 나는 엄마의 정년퇴임식에도 그 흔한 꽃다발 하나 가져가지 않았다. ‘어차피 남들이 많이 줄 테고 가져오면 처치곤란’이라면서. 내가 엄마를 보는 시선은 늘 이성적이었다. 엄마가 나를 보는 시선과는 달리. 며칠 뒤부터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식탁 위에 놓인 꽃바구니 사진이다.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는 주말에나 얼굴을 보는 가족이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밥 먹고, 한잔 하고, TV도 보고, 강아지랑 함께 놀아주지만 정작 서로의 고민을 나눈 적이 언제였던가. 대학간다고 훌쩍, 군대간다고 훌쩍, 서울이 직장이라고 훌쩍 떠났다가도 언제든 아무일도 없었던 듯 돌아올 수 있는 곳. 하지만 때론 섬 속의 섬과 같이 느껴지는게 또 가족아닐까.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핵심을 잘 짚어냈다. 소통하지만 소통되지 않는,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가 될 수밖에 없는 가족의 역할에 대해 작품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고 말한다.

마지막회를 앞둔 시점 아빠 김상식(정진영)과 엄마 이진숙(원미경)은 삼남매에게 “가족이 뭘까, 너희한테 가족이 뭐냐”며 곪을대로 곪아버린 상처를 터트린다. 김은주(추자현) 김은희(한예리)자매의 절연과 김은주의 이혼, 김지우(신재하)의 도피 등 자녀의 일방적인 선택에 무기력한 무모는 분노하면서도 자책한다. 자기 탓은 아닌지. 모든 구성원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가 다르기에 모두가 다른 세상에 살게된 지금 상처를 보듬기에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믿었던 막내는 결국 거대한 사고를 쳤다. 가족에게 한마디 인사도 없이 박찬혁(김지석)에게 문자 한통만 달랑 남기고 떠나버린 막내아들. 호수 근처에서 카약 대여점을 하며 살자는 첫사랑의 꼬임에 빠져 탈탈 털린 뒤 널린 빨래처럼 돌아온 그에게 큰누나 김은주는 “나중에 네가 오늘을 생각하면서 웃을 수 있는 날, 그때 이야기해 달라”고 말한다. 훗날 느끼겠지, 차라리 그 자리에서 한 대 맞는게 훨씬 좋았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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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처럼 살 자신이 없었다. ‘뭔가를 이루지 않아도 되는 삶’, 남자들은 꼭 한번씩 그런 삶을 꿈꾼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적게 벌되 여유로운 인생. 지긋지긋한 교통체증과 불어나는 집값과 직장 상사에게 불려가는 걱정따윈 필요없는…. 그런 삶을 꿈꿨던 어른아이는 아버지의 ‘뿌리내릴 곳 없이 혼자 굴러다니던 내 인생에 찾아와준 가족’에 대한 마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진짜 어른이 된다.



엄마는 무너져내렸다. 참고 참아봐야 병 밖에 더 되나.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았지만, 정작 자식들은 아침에 눈뜨면 차려져 있는 밥상처럼 그 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엄마는 아빠에게 우리 둘 다 이제 애들 그만 무서워하고, 그만 생각하자. 우리한테 이제 우리 둘밖에 없다”고 말한다. “돌멩이는 이리저리 구르다 깨져 모날 수 있으니, 나무해요. 우리 초록이 무성한 시절은 지났으니 아름답게 단풍 져 봐요”라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을 알게 된 아빠는 “네 엄마 이제 너희하고 그만할 거야. 내가 그만두게 할 거야”라며 사실상의 절연을 선언한다. 죽일 듯이 싸워도 며칠 뒤에 외식한번 하면 풀리는게 가족이라지만, 마지막 사건은 심상치 않다. 드라마에 한정된 이야기라기에는 누구네 가족도 겪는, 겪을 수 있는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족은 성장할수록 하나의 별에서 커다란 우주로 커진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며 자신만의 별을 만들어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흩어져 각자가 되지만, 각자가 모여 다시 가족이 된다. 박찬혁의 말마따나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주고받고, 어디서 상처받고 오면 위로해주고 그런 게 가족인 거지” 그래 그게 가족인 거지.

맨손으로 일어나 자식 셋을 대학에 보내고, 아파트를 사고, 트럭을 산 아버지. 평생 가슴앓이하며 화 한번 제대로 못 낸 어머니.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지만 정작 자신의 속내는 꽁꽁 숨기는 첫째, 늘 다리가 되어야 하는 둘째, 더 커야 할 막내. 이들의 마지막 대화는 과연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진짜 가족이 뭘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말에 집에 가면 엄마한테 물어볼게요.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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