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금융당국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8일 금융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누수 피해가 실제로 발생한 경우에 한해 누수 사고 재발 방지 및 손해경감 목적의 공사비용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 가운데 오탐지 비용과 바닥철거·배관교체·방수작업 등의 공사비용은 손해방지비용으로 보고 보험금 지급을 권고했으나 손해방지·경감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벽면 공사 및 보양 공사비용 등에 대해서는 보험사의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일배책은 보험기간 중 사고로 타인의 신체 장해, 재물 손해를 입힌 경우 법률상의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특약으로 누수 사고처럼 주거 중인 주택의 소유·사용·관리에 기인한 우연한 사고에 대해서도 배상한다.
이번 분조위에서 쟁점이 된 것은 손해방지비용의 범위다. 일배책 표준약관 및 상법에서는 타인에게 부담하는 법률상 배상책임 외에 손해를 방지하고 경감하기 위해 쓴 비용을 손해방지비로 정의하고 이에 대해 보상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내용이 모호해 분쟁이 빈번했다. 향후 발생할 누수를 예방하는 공사비용은 예방비용에 해당,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보험 업계와 상법 및 약관상 가입자의 손해방지 및 경감 노력을 의무화하는 만큼 그에 따른 공사비용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당국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이번 분조위 결정은 누수 사고 발생 여부나 직접 혹은 간접 비용 여부에 관계없이 누수 차단을 위한 방수공사비 전액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2013년 분조위 결정 이후 7년 만에 이뤄진 조정으로 손보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분조위 결정 이후 일배책을 활용해 인테리어 공사비를 보전하는 사례가 크게 늘면서 담보 손해율이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튜브, 네이버 블로그 등에는 인테리어 공사 전에 반드시 일배책에 가입하라는 조언이 쏟아진다. 본지가 주요 보험사 4곳의 일배책 손해율을 집계한 결과 2017년 216%였던 손해율은 지난해 318%까지 급등했다. 100원의 위험보험료를 받아 318원의 보험금을 지급할 정도로 심각한 적자를 봤다는 얘기다. 이 기간 누수 관련 보상이 포함된 대물 관련 지급 보험금 규모는 688억원에서 1,274억원으로 늘었다. 이중 누수 관련 지급 비율도 30%대에서 절반 수준으로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누수 피해 복구비용 이외에 손해방지비 명목으로 지급된 보험금 규모가 지난해 6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7년 전 분조위 결과에 비해 보험금 지급 기준이 명확해졌지만 업계로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2~3년간 개별 보험사가 진행한 재판 결과에 비해 여전히 보험사에 불리한데다 김은경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이 교수 시절인 2013년 발표한 논문 ‘손해방지의무와 손해방지비용에 대한 보험계약법상의 고찰’을 통해 주장한 내용과도 상충하는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2018년 6월 서울남부지법 판결에서는 지하물받이공사, 수도공사, 타일 공사, 배관공사 등에 대해서는 손해방지비로 판단했으나 다른 누수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실시한 방수공사, 시멘트 공사, 타일 공사에 대해서는 지급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 서울동부지법과 중앙지법 판결에서는 피보험자의 이익을 위해 행한 보험목적물 수리, 누수 사고의 결과가 아닌 원인을 없애기 위한 공사는 손해방지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김 처장 역시 논문에서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 당시 논문에서 김 처장은 “손해의 방지는 보험사고 자체를 예방하거나, 동일한 원인으로 인한 장래의 보험사고까지 저지시키는 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손해방지조치와는 무관하게 피보험자에게 어차피 생겨날 수 있었던 비용은 손해방지비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상보험에서는 선박 충돌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확산을 막기 위해 오일펜스를 설치하고 흡착포로 기름을 제거하는 비용까지만 손해방지비용으로 인정하는데 이번 분조위 결정을 대입해보면 충돌한 선박을 온전히 수리하는 비용까지 보상하라는 격”이라며 “월 500~1,000원에 불과한 일배책 보험료로 전국 아파트 수리비용을 보험사가 부담하라는 결정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