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토요워치] 그들은 '아침이슬' 대신 저항의 기호 '#'을 노래한다

■2030이 바꾸는 시위 문화

시간·비용 들고 폭력 사태 우려 등

거리 시위 익숙하지 않은 젊은세대

온라인 통해 손쉽게 사회문제 개입

언론보다 먼저 이슈 선점해 공론화

듣고 싶은 목소리만 듣는 경향 강해

소수의견이 전체의견으로 포장될수도

경청 자세 길러야 새 시위 문화 안착




직장인 양모(28)씨는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살면서 거리시위나 집회에 나가본 적이 별로 없다. 대신 거리에 직접 나가지 않고도 참여 가능한 비대면 온라인 시위에는 적극적이다. 연초에는 텔레그램 내 아동 성착취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과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했다. 얼마 전에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공유사이트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24)의 미국 송환불허 결정을 규탄하는 문자를 국회의원들의 휴대폰에 보내는 ‘문자 총공(총공격)’과 포스트잇 시위활동도 했다. 그는 “거리시위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물리적 충돌도 우려된다”며 “반면 해시태그나 온라인 청원은 나의 주장을 언제 어디서든 쉽게 표출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한다.

사회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주요 방식이었던 시위문화가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1980~1990년대생으로 대표되는 신(新)세대의 영향이 크다. 386세대로 대표되는 이전의 민주화 세대들은 군사정권에 저항하고 2000년대 들어서는 쌀 개방, 광우병 사태 등 사회경제 이슈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거리시위를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등 공권력과 출동을 빚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지금의 20~30대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거리시위에 익숙하지 않다.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소통창구가 다양해진데다 비폭력 방식으로도 충분히 자신들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다른 형식의 시위문화를 찾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처럼 거리에서 직접 구호를 외치면서 주장·호소하는 방식은 젊은 세대에게 익숙하지 않다”며 “SNS로 소통하는 게 편리한데다 과거 일부 거리시위가 폭력 사태로 이어졌던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새로운 시위 방법을 적극 모색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공간을 주 무대로 하는 새로운 시위문화는 기존의 거리시위보다 장점도 많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집회에 20만명 모이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이 동의하는 사례는 많지 않느냐”며 “온라인 시위나 포스트잇 운동은 참여비용이 낮지만 사회문제에 손쉽게 관여할 수 있고 이슈에 대한 의견도 빠르게 확산할 수 있어 거리시위보다 효과적인 의사표현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부러진펜운동’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들이 500개 넘게 올라와 있다. ‘#부러진펜운동’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요원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온라인 시위다./인스타그램 캡쳐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부러진펜운동’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들이 500개 넘게 올라와 있다. ‘#부러진펜운동’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요원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온라인 시위다./인스타그램 캡쳐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지난 5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이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연합뉴스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4주기를 맞은 지난 5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이 추모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연합뉴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도 “거리시위는 시간과 장소 등 물리적 제약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온라인 시위는 단순히 찬반 수준을 넘어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풍부하게 밝힐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사회 이슈에 의견을 낼 만큼의 적극적 의사가 없던 사람들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고 언론이 포착하지 못한 이슈나 소수의 목소리도 선제적으로 공론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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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온라인 시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공존한다. 온라인 시위는 시민들이 참여하기 쉽고 이슈에 대한 의견 전파 속도도 빠른 만큼 자칫 어느 한쪽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인 양 과대 대표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상대방의 주장을 듣지 않고 배척하는 경향이 커질 위험도 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 공간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목소리만 모아서 들을 수 있는 특성이 있다”며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다른 가치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것인데 온라인 시위가 비방문화를 더 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의 공방이 오프라인 공간으로까지 이어져 더 극한 대립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이른바 ‘조국 사태’로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에 모인 집회 세력 갈등이 극에 달한 게 대표적이다. 조국 전 장관에 제기됐던 각종 의혹을 두고 온라인에서 설전을 벌였던 조국 찬반 세력은 각각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여 ‘조국 수호’ ‘조국 사퇴’라는 엇갈린 구호를 외치며 서로에 대한 비방을 한 달 넘게 지속했다. 최근에는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 회계의혹이 불거진 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인근에서 일본군 성 노예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시위와 보수단체의 맞불집회가 동시에 열리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새로운 시위문화가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복경 책임연구원은 “상대방에 배타적인 온라인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타인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의사를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 상대방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는 법을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1인 미디어에서 나오는 여러 극단적 주장들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공적인 공간에서 계속 논의하는 것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규섭 교수도 “자기 주장을 내세울 때 혐오를 배제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표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온라인 시위에 나타나는 민심을 어떻게 해석할지 얼마나 대표성이 있는 여론으로 봐야 할지 학계가 분석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동훈·심기문·김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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