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찾은 국내 4대 대형 병원 가운데 한 곳의 산부인과는 대기 줄도 없이 한산했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36)씨는 원래 자녀계획이 없는 맞벌이 부부인 ‘딩크(DINK)족’이었지만 ‘하늘의 뜻’에 따라 아기가 생겼다. 김씨는 “아직 출산휴가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벌써 회사를 비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출근하면 애는 누가 봐줄지 닥쳐보면 어떻게든 하겠죠”라고 말끝을 흐렸다.
청년들이 살기 힘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아기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빅4 병원에서 나온 상반기 출생률이 마이너스 14%를 기록했다. 사망자가 출생자를 앞지르는 ‘인구 쇼크’가 만성화 됐다는 의미다. 30일 기준 올해 1~5월 전국 신생아도 12만 470명으로 전년 동기 13만 4,739명 대비 10% 넘게 감소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인구가 감소한 때는 2017년 12월이다. 출생아 2만5,147명에 사망자 2만6,883명으로 사상 처음 인구가 감소했지만 일시적이었다. 1년 뒤인 2018년 12월에도 출생아 2만2,767명, 사망자 2만6,523명으로 일시적인 인구 쇼크가 찾아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3차 인구쇼크가 오자 우리나라 인구 회복 탄력성은 무너졌다. 이후 줄곧 우리나라 인구는 감소 중이다.
특히 임신기간 10개월을 고려하면 코로나19 사태로 출생률은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혼인 건수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9일 발표된 통계청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1~5월 혼인 건수는 9만 2,101건으로 지난해 10만2,145건보다 6.5% 감소했다. 월별로 보면 더 심각하다. 1월 마이너스 7%, 2월 마이너스 5%, 3월 마이너스 1%로 그나마 감소 폭이 줄어들던 혼인 건수가 4월에는 마이너스 21.8%, 5월에는 마이너스 21.3%를 기록했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안 가질 수 있다. 2018년 통계청에 따르면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30대 59.9%→20대 51.5%→10대(13~19세) 46.4%로 세대가 갈수록 계속 낮아지고 있다. 올해 7월 결혼한 박모(33·기혼)씨는 “아이를 낳으면 좋지만 일단 돈이 문제라 고민 중”이라며 “경력단절도 걱정되고 회사생활도 벅찬데 과연 둘이 잘 돌볼 수 있을까도 걱정된다. 친정에 맡기는 것도 민폐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희생을 꺼리는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 확산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족을 선택하면 엄청난 희생을 치뤄야 한다”며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기존 ‘가족주의’에 대한 역습”이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한국만 1명 미만의 최저 출생률을 보인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출산율은 한국 0.9명(0.92명)을 기록했다. 선진국인 노르웨이 1.5명 스웨덴 1.7명, 프랑스 1.8명 뉴질랜드 1.8명 등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19년 일본 출생율(1.36명) 보다 낮은 수치다.
지난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발표에서도 2060년에는 생산가능인구가 올해 대비 48.1%, 현역병 입영대상자는 38.7%, 학령인구(6∼21세)는 42.8%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1명당 부양해야 하는 노인은 0.22명에서 0.98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기성세대가 야기한 교육과열과 집값 상승, 좋은 일자리 부족 등이 복합적인 이유로 제기된다. 김미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한국에서는 양육비와 교육비를 위한 경제적 비용이 크다”며 “정부가 대책을 많이 세우고 있지만 주거·교육을 포함해 경제 문제가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신혼부부와 육아 대책 등이 다 실패한 데다 코로나 사태에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까지 겹쳤다”며 “재정 지원 등을 통해 결혼을 두려워하는 청년들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