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제’ 박인비(32·KB금융그룹)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시즌 중단에 누구보다 아쉬움이 컸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20시즌 4개 대회에 출전해 개막전 준우승과 지난 2월 호주 여자오픈 우승 등으로 좋은 흐름을 타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인비는 공허함에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스윙스피드가 시속 2마일 정도 빨라졌을 만큼 ‘강제 휴식기’ 동안 연습과 운동을 병행하며 의미 있게 보냈다고 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총상금 8억원)에 출전한 박인비의 플레이에서는 5개월의 실전 공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박인비는 30일 제주 세인트포 골프&리조트(파72)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2개로 4언더파 68타를 쳐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LPGA 투어 통산 20승을 거둔 그는 국내에서는 지난해 두산 매치플레이챔피언십 우승이 유일하다.
전날 “긴장될 것”이라던 박인비의 말처럼 출발은 주춤했다. 10번홀에서 경기를 시작한 박인비는 버디보다 보기를 먼저 적어냈다. 13번과 14번홀(이상 파4)에서 1타씩을 잃었지만 경기력을 다잡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5번(파5)과 16번홀(파3) 연속 버디로 만회한 그는 18번홀(파4)에서도 4m가량의 퍼트를 넣어 1언더파로 반환점을 돌았다. 후반 들어 3번홀(파4) 버디에 이어 5번홀(파3)에서는 티샷을 홀 1m에 붙여 다시 1타를 줄였다. 이후 낙뢰로 2시간 넘게 중단됐던 경기가 재개된 뒤에도 8번홀(파4)에서 버디를 보탰다.
박인비의 빠른 실전 적응에는 캐디로 나선 남편의 역할도 컸다. 박인비의 스윙코치이기도 한 남기협씨와 공식 대회에서 호흡을 맞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인비는 “초반 아이언 샷 실수로 연속 보기가 나왔는데 남편이 코치이다 보니 바로바로 수정할 수 있어서 경기 흐름을 바꾸고 타수를 줄이는 것이 가능했다”면서 “저보다 캐디가 더 긴장할까 봐 신경을 썼는데 퍼트라인 파악에 도움을 받는 등 전체적으로 호흡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1인4역 이상을 하는 남편에게 용돈을 올려줘야겠다”며 웃은 그는 “5개월 만의 실전으로는 만족스러운 스코어를 냈지만 아직 3라운드가 남은 만큼 실수를 줄이면서 스코어를 낼 것”이라며 우승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첫날 샷이 가장 날카로운 선수는 이소영(23·롯데)이었다. 박인비와 동반한 이소영은 7언더파 65타를 몰아쳐 단독 선두를 달렸다. 첫 홀인 10번홀(파5)부터 샷 이글을 작렬하며 기세를 올렸고 이후에도 보기 없이 5개의 버디를 쓸어 담는 무결점 플레이를 펼쳐 5월 E1 채리티오픈 제패에 이어 시즌 두 번째 우승 사냥에 시동을 걸었다. 이소영은 이번 시즌 8개 대회에서 5차례 톱10에 입상하는 꾸준함으로 대상 포인트 1위, 상금 2위에 올라 있다.
직전 2개 대회 연속 컷오프 등 이번 시즌에 다소 부진한 조아연(20·볼빅)은 6언더파를 쳐 반등을 예고했다. 지난달 롯데칸타타 여자오픈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였다가 최종일 역전을 허용하고 4위로 내려갔던 한진선(23·비씨카드)도 6언더파로 출발해 생애 첫 우승에 재도전할 발판을 놓았다. 지난해 주 무대를 일본으로 옮긴 배선우가 5언더파로 뒤를 이었다.
롯데칸타타 챔피언 김효주(25·롯데)와 유현주(26·골든블루)·박교린 등이 박인비와 나란히 4언더파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는 전 세계 1위 박인비와 유소연(30), 현재 세계 1위 고진영(25)의 출전으로 관심을 모은다. 고진영과 유소연은 중위권으로 출발했다.
/제주=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