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매물은 오늘 광고를 올리면 그냥 오늘 나갑니다. 대단지지만 지금 나온 전세 매물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예요.”(서울 강동구 고덕동 G 공인)
“인기 평형의 경우 전세로 들어오려는 대기자는 계속 쌓이는데, 집주인 중에서는 임대차 3법 때문에 아예 집을 비워두겠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임대인은 임대인대로, 임차인은 임차인대로 걱정하는 문의가 많이 들어옵니다.”(서울 양천구 목동 C공인)
거대 여당이 속전속결로 밀어붙인 임대차 3법에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새로 셋집을 구해야 하는 신규 임차인들은 자취를 감춘 매물과 급격히 오른 전셋값에 울상을 짓고 있다. 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 기존 세입자는 안도하는 모습이지만, 임대인들은 반대로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공유하는 모습이다. 시세에 맞춰 임대차 재계약을 하려면 기존 세입자가 아닌 새로운 임차인을 구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후의 임차인도 가려 받겠다는 목소리 또한 나온다.
◇‘임차인 내보내는 방법 있나요’ 기존 세입자 거부하는 임대인=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된 31일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세입자 내보내는 방법’을 묻고 답하는 글이 오르내리고 있다. 현재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청구하면 임대료 증액폭이 5% 이내로 제한되지만 새로운 세입자를 받으면 전월세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집을 비운 다음 시세에 맞춰 신규 계약을 하려는 취지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거론된 방법 가운데 하나가 후순위 대출을 받아 3개월을 연체한 뒤 경매 경고문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세입자가 불안한 마음에 자진해서 임대차 계약을 종료하리라는 것이다. 집수리를 거부하겠다는 이야기도 거론된다. 물이 새거나 보일러가 고장 나는 등 심각한 하자가 아니라면 집주인에게 수리할 의무는 없다는 점을 이용해 ‘살기 불편하면 스스로 나가라’는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다.
일부 집주인들은 세입자의 전세대출 만기 연장 시 동의를 하지 않는 식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을 무력화하겠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와 관련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보증기관에서 전세대출보증을 받은 임차인이 전세계약 갱신 시 기존 전세대출을 그대로 연장할 때는 임대인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임대료를 인상하지 못한 만큼 세입자에게 다른 명목으로 보전받으려는 분위기도 포착된다. 부동산 중개료 등 임대차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임차인에 떠넘기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가구 사용료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받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G공인중개사는 “정부는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러한 우회로를 일일이 다 규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받을 세입자는 흡연 여부나 반려동물을 키우는지 등 개인적인 부분까지도 따져 가려 받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세입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자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사라진 전세 매물, 셋집 구하는 임차인은 어쩌나=전세 매물은 급감하는 모습이다. 기존 세입자들은 눌러앉고, 집주인들이 직접 거주하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전세 호가는 앞선 거래보다 수억원 올랐다. 전세 품귀에 ‘지금 안 올리면 4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못한다’는 집주인들의 불안감이 겹쳤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 84.24㎡는 지난 6월 7억9,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강동구 고덕동 일대는 지난해 1만가구가 넘는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서 전세 시세가 6억원까지 떨어졌지만 최근 임대차 3법 논란에 다시 급격히 올랐다. 현재 해당 면적의 전세 호가는 9억~10억원선에 형성돼 있다.
강남 대치, 양천 목동 등 인기 학군지역의 경우 셋집 구하기가 더 치열하다. 자녀 교육을 위해 ‘맹모’들이 웃돈을 얹어서라도 들어가려 하지만 매물이 없다. 5월 15억3,000만원에 전세 거래된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9㎡의 경우 현재 호가가 16억5,000만원에 달한다. 대치동 M 공인 대표는 “가격도 많이 올랐을 뿐 아니라 매물 자체가 없어서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원래 방학 동안에 전세 계약이 종종 체결되고는 했는데 지금은 계약이 안 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권혁준·양지윤기자 awlkw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