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매물로 내놓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 ARM이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엔비디아와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협상이 성사되면 세계 반도체 산업계에 일대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1일(현지시간)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반도체 회사인 엔비디아가 소프트뱅크로와 ARM 인수를 논의 중”이라면서 “매각 협상 성사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인수 예상 가격은 320억달러(약 38조원) 규모로, 5년 전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한 금액과 비슷하거나 약간 늘어난 수준이다.
현재 ARM 지분 75%는 소프트뱅크가, 25%는 자회사 비전펀드가 보유하고 있다. ARM은 반도체 분야에서도 진입장벽이 높은 핵심 원천기술인 반도체 설계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삼성전자·퀄컴·애플 등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특히 세계 스마트폰 AP(중앙처리장치) 95%가 ARM의 설계도를 활용하고 있다. ARM 인수를 추진하는 엔비디아는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제조사로, 최근 인텔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2016년 ARM을 320억달러에 인수하며 “바둑으로 치면 50수(手) 앞을 내다보고 인생 최대의 베팅을 했다”며 “미래 성장 가능성을 감안하면 10년 후엔 ‘싸게 샀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물인터넷(IoT) 시장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매각에 나섰다.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그룹은 공유 오피스 ‘위워크(WeWokr)’ 등 스타트업 투자 실패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여파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FT에 따르면 헤르만 하우저 ARM 공동 창립자는 “이번 인수합병은 영국이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을 최고의 입찰자에게 매각한 사례가 될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자금 마련, 정부 당국의 결합 승인 문제 등 과제도 산적해있다. 앞서 삼성전자의 입찰 여부가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위험부담을 감안해 참여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