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학 구조개혁이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지방 공공 의과대학과 한국전력 산하 한전공대 설립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당정의 이런 행보가 대학 구조개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보다는 기초과학을 키우고 기존 공과대학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3일 교육계에 따르면 당정이 지방에 공공 의대를 세우기로 하면서 대학 정원 감축 및 통폐합 작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방 공공 의대 신설 과정이다. 의대가 없는 지역에 의대 신설을 적극 검토하고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을 활용해 공공 의대를 설립하는 입법을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정은 지난 2018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가 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5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지방에 의대를 늘리는 결정에 정치적 셈법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의사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정치적으로 지방 의대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방 의대를 신설하면 정원을 줄이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한전공대 설립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KAIST·포항공과대(포스텍) 등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5곳 있는데 오는 2022년 전남 나주에 한전공대를 세우려는 것은 호남 표심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총선 직전인 올해 4월3일 대학설립심사위원회를 열고 한전공대 법인 설립 안을 최종 의결했다.
지난해 1조2,765억원의 영업 손실을 낸 한전이 또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대학을 세우는 것은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한전공대를 세우는 것에 반대한다”며 “학령인구가 줄고 기존 공과대학 지원 및 양성도 열악한 상황에서 대학을 세우는 목표와 방향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지방대가 공영형 사립대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재정난에 허덕이는 사립대에 혈세를 지원하는 방식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공영형 사립대는 국가가 대학 운영비를 50% 이상 책임지는 대신 이사진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해 반 국립처럼 운영되는 대학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된 사업으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조선대(광주광역시), 상지대(강원도 원주시), 평택대(경기도 평택시)를 중심으로 공영형 사립대 설립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3개 대학은 올해 초 교육부가 발주한 ‘공영형 사립대 도입 효과성 검증을 위한 실증연구’ 용역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상지대는 상지영서대와 통합 작업을 추진하면서 전국 제1호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지정받겠다고 밝혔다. 조선대와 상지대는 6월 공영형 사립대 추진에 협력하는 협약도 맺었다. 정부가 현실에 맞는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 출신의 한 대학 교수는 “사립대가 국립대 성격으로 바뀌면 구성원들은 공무원화되고 재정만 많이 들어간다”며 “지방대가 지역 사회와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