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부족한 의사 대신 수술·시술·처방하는 간호사 1만명은 될 것"

보건의료노조 “의사 늘려 불법의료 근절해야”

병원·의사들 "바쁘다" "채용하기 어렵다"면서

의료법에 없는 '진료보조 PA 간호사'등 운영

수술·시술·처방 대행시키다 환자 사망하기도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들 이중적

수많은 의사와 병원들이 정부·여당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바쁘다”는 이유로 수술·시술·처방 등 의료법상 의사 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 중 상당 부분을 불법적으로 간호사 등 ‘진료보조인력(PA)’에게 떠넘기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6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학병원에서 PA로 일하는 간호사의 경우 지난해 조사한 15곳에서 평균 50.8명(총 762명)이었는데 올해 조사한 8곳에서 평균 89.6명(총 717명)으로 늘어났다”며 정부에 전국적 현황조사와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 간부들과 상급종합병원에서 병원·의사들의 지시로 전공의 등 의사가 해야 하는 불법의료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PA(진료보조인력)간호사’(가면 착용자)들이 불법의료 근절, 의대 정원 확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임웅재기자보건의료노조 간부들과 상급종합병원에서 병원·의사들의 지시로 전공의 등 의사가 해야 하는 불법의료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PA(진료보조인력)간호사’(가면 착용자)들이 불법의료 근절, 의대 정원 확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임웅재기자



수술·시술·처방 등은 의료법상 의사 만이 할 수 있으며 PA는 법적 근거가 없는 직역이다. 하지만 2016년말 첫 시행된 전공의법(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법)이 대학병원 등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련시간을 주당 평균 80시간 이하로 제한하자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거나,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간호사·응급구조사·의료기사 등을 PA로 지정해 불법의료를 강요하는 병원과 PA 수가 급증하고 있다. 현재 1만명 안팎의 PA간호사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사 부족으로 거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이런 일들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게 우리의 의료현실”이라며 “정부, 의료계, 환자단체, 국민, 보건의료노동자 등이 참여하는 공개토론 등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박노봉 수석부위원장은 “정부가 전공의법을 제정해놓고 의사인력 확대 등 후속조치를 미뤄 PA의 불법의료가 판을 치는 의료현장이 됐다”며 “이에 대한 공식적 문제 제기가 금기시돼 왔는데 이제부터라도 의사 부족과 불법의료 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여당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며 각각 7일과 14일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자료: 보건의료노조)(자료: 보건의료노조)


이날 회견에서는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PA로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불법의료 실태를 증언했다.

# 남자 간호사 A씨는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의사가 초보 간호사에게 떠넘긴 의료행위 때문에 사망한 환자 2명의 사례를 소개했다.


하나는 음식을 씹어먹지 못해 묽은 음식을 위에 직접 흘려보내기 위해 입이나 코에서 위까지 가느다란 관을 삽입하는 의료행위를 의사 대신 초보 간호사에게서 받은 노인의 사례. 의사가 “일이 많아 바쁘다”며 간호사에게 대신 시켰는데 관이 폐로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흡입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의사가 할 경우 청진 등을 통해 관이 위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는데 그런 절차는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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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으로 장기간 입원했던 어린이 1명도 퇴원을 앞두고 중심정맥관(중심정맥과 심장을 연결하는 굵은 관)에 꼽혀 있던 주사바늘을 빼는 일을 의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간호사에게 시켰다가 호흡곤란·폐색전증으로 사망했다. 초보 간호사는 중심정맥에 꼽았던 주사바늘 부위를 심장보다 낮춘 상태에서 빼야 한다는 것조차 몰라 일반 주사바늘처럼 뺐다.

A씨는 “두 사망사고 모두 환자 측은 해당 조치를 한 의료인이 의사인지 간호사인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넘어갔다”고 했다. 의사와 같은 흰 가운을 입고 명찰만 단 PA간호사를 의사로 잘못 아는 환자들도 많다.

A씨는 “10여년 경력의 PA간호사가 심장초음파 검사·진단업무를 했다가 불법·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돼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행정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걸 봤다”며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든 정부와 병원·의사들은 아무런 책임도 안 진다”고 분통을 떠뜨렸다. 그는 “매년 200명 이상의 간호사가 우리 병원에 입사하지만 불법의료행위를 포함한 과도한 업무부담 때문에 20~30%는 사직한다”며 “그런데도 병원은 수익창출을 위해 더 많은 환자를 진료·수술·입원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자료: 보건의료노조)(자료: 보건의료노조)


# 다른 지방 상급종합병원의 24년차 간호사 B씨는 “전문의 회진 때 따라다니며 환자상태 확인과 대리처방, 치료계획·검사결과·수술·시술에 대한 설명과 환자동의서를 받는 일, 수술 준비·보조, 수술 후 봉합, 수술부위 드레싱, 전해질·산소포화도 교정 처방, 재활보조기 착용 교육, 전립선초음파 검사(남자 간호사), 태아계측검사, 환아 정맥채혈·주사, 입원환자 경과기록 작성, 환자를 1차 의료기관으로 회송할 때 소견서 작성 등 전공의가 하던 업무의 대부분과 전문의가 할 일을 PA간호사가 떠맡고 있다”고 증언했다. 또 “우리 병원의 경우 19개 진료과에서 1~13명씩 총 66명의 PA가 배치돼 있다”며 “수술이 많은데 전공의들에게 인기가 없고 수술 전후 처치가 많은 외과가 13명으로 가장 많다”고 했다. PA를 쓰는 진료과는 감염내과, 류마티스내과, 신장내과, 신장내과, 소화기내과, 혈액종양내과, 신경과, 안과, 성형외과, 청소년과,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외과 등이다.

B씨는 “환자나 보호자가 도대체 의사는 언제 볼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일이 많지만 수술이나 외래진료로 바빠 못 온다고 둘러대는 일이 많다”며 “PA가 국가면허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료법에 없는 직역이어서 최근 ‘임상전담 간호사’로 명칭을 바꿨지만 하는 일은 마찬가지”라며 “의사가 할 의료행위들을 PA가 대신하면서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간호사 임금의 10배 연봉을 줘도 지방에 안 오겠다는 의사들에게 도대체 어떤 처우를 해줘야 한다고 바라는 것인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최대집 회장에게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나순자(가운데)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6일 기자회견에서 정부, 의료계, 환자단체, 국민, 보건의료노동자 등이 참여하는 공개토론 등을 통해 불법의료 근절 대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사진=임웅재기자나순자(가운데)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6일 기자회견에서 정부, 의료계, 환자단체, 국민, 보건의료노동자 등이 참여하는 공개토론 등을 통해 불법의료 근절 대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사진=임웅재기자


# 지방의료원 간호사 C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입원했지만 감염내과 전문의가 없어 전문적 치료를 못하고, 의사 1명이 그만두면 다시 구할 때까지 진료를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지방의료원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심뇌혈관계·호흡기계 전문의가 수요보다 현저하게 적어 수도권 병원에서도 구하기 힘들고 의사가 부족한 우리는 이런 응급환자가 오면 큰 병원으로 보낼 뿐이다. 소아과도 1년 넘게 의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 발표안보다 공공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정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불법의료행위는 우리가 파악한 것만 400가지가 넘고 올해 지구별 교섭에서 불법의료 근절이 핵심 쟁점 중 하나로 부상했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며 “전공의가 파업에 참여해도 PA간호사 등이 있기 때문에 병원이 안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임웅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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