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종일 재미있게 지낼 뿐이죠”
2016년 6월 25일 뉴욕의 유명 사진 기자 빌 커닝햄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뉴욕은 큰 슬픔에 잠겼다. 그는 2009년 뉴욕기념물관리위원회로부터 살아있는 기념물로 지정됐을 정도로, 뉴욕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보스턴 출신의 커닝햄은 하버드대에 입학하자마자 곧바로 학업을 중단했다. 공부보다는 패션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옷 가게에서 일하기도 하고, 패션에 관한 글을 시카고트리뷴 등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진에 꽂혔다.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패션을 기록하는 일에 빠졌다. 특히 1978년 그가 우연히 찍은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의 사진이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이후 NYT의 고정 사진 칼럼을 맡았다. 이후 40여 년 간 자전거를 타고 좁은 골목길에서 화려한 파티장까지 뉴욕 곳곳을 누비며 패션을 주제로 뉴요커들의 삶을 기록했다. 그는 패션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쳇바퀴 같은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활력소 같은 존재라고 믿었다.
그는 패션에 대한 열정 만큼 세상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2008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고, 뉴욕 최고급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은 그를 기리는 마네킹을 세우기도 했다. 또 2010년에는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빌 커닝햄 뉴욕(감독 리차드 프레스)’이 제작지기도 했다.
그런 그의 삶과 철학이 그림책으로도 재현됐다. 글은 언론인이자 영양학자인 데보라 블루멘탈이 썼다. 고인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글이다. 블루멘탈은 “뉴욕에서 빌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맨해튼 5번가와 57번가 모퉁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커닝햄이 생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용기를 가져 보자고 용기를 북돋운다.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마샤 디언스가 맡았다. 수채화가 강점인 마샤 디언스는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의 팝업 카드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번 책의 그림 역시 화려하면서도 우아하다.
책은 패션과 사진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이지만 어른도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충분히 설렐 수 있다. 40페이지,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