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유럽만 세계사 중심? …아니올시다!

[책꽂이]하버드 C.H.베크 세계사 : 1350~1750

볼프강 라인하르트 엮음, 민음사 펴냄

하버드대-獨 C.H.베크 출판사 공동 기획

세계사 집대성 시리즈 중 세번째 책 나와

유럽 중심 역사관 아닌 각 지역 관점 담아

윌리엄 블레이크의 ‘삼미신’./위키미디아윌리엄 블레이크의 ‘삼미신’./위키미디아



1492년 10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의 한 섬에 ‘상륙’했다. 이를 계기로 땅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은 졸지에 ‘인디언’ 또는 ‘인디오’가 됐다. 콜럼버스의 대항해 성공 이후 바다의 끝이 낭떠러지가 아님을 알게 된 유럽인들은 점점 더 많이 대서양을 건넜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몰려오는 이주민의 물결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땅을 빼앗은 유럽인들의 상상력은 참 형편이 없었다. 깃발을 꽂은 지역에 런던, 산티아고 같은 유럽 지명을 그대로 갖다 붙였다. 니우암스테르담이나 뉴욕은 그나마 신경을 써서 붙인 이름이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이 과정을 신세계로의 팽창이라고 자평했고, 세계사의 주인이 됐다고 오랫동안 믿었다. 그리고 지금도 대다수의 믿음은 변함이 없다.




17세기 세계지도./픽사베이17세기 세계지도./픽사베이


하지만 이 시기 외부로의 팽창은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만 일어난 현상이 아니었다. 서로 몰랐을 뿐 세계 각지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식민화하던 시기 중앙아시아 동부에서는 청이 최후의 유목 제국을 맹렬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인도아 대륙에서는 무굴제국이 종교 통일을 명분으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를 굴복시키려 하고 있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제국 건설을 도모하는 정치 세력의 팽창 전략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버드-C.H.베크 세계사 : 1350~1750’는 미국 하버드대와 독일의 C.H.베크 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해 펴내는 역사 시리즈 중 한 권으로, 1350년 무렵부터 1750년 무렵까지 약 400년 간의 세계사를 집대성했다. 백인 중심주의, 유럽 식민 사관에서 벗어나 세계 각 지역의 주요 변화와 흥망성쇠 사건을 다룬 후 이를 바탕으로 각 세계가 하나로 상호 연결되는 과정을 총정리했다. 볼프강 라인하르트 프라이부르크대 명예교수, 피터 C. 퍼듀 예일대 교수, 수라이야 파로키 이븐 할둔대 명예교수 등 오늘날 최고 역사가들이 저자로 참여했다.


책은 이 시기에 대해 각 지역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전해 나가다가 서로 발견하고 역동적으로 반응하며 연결됨으로써 오늘날의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서술한다. 유라시아 대륙, 오스만 제국과 이슬람 세계, 남아시아와 인도양, 동남아시아와 대양, 유럽과 대서양 세계 등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륙과 바다의 역사를 다룬다. 각 지역의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세계사로 모여드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1571년 신성동맹 함대가 투르크 함대를 격파한 레판토 해전.작자미상./위키피디아1571년 신성동맹 함대가 투르크 함대를 격파한 레판토 해전.작자미상./위키피디아


책은 무려 1,268페이지나 된다. 지역별 역사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하려 애쓴 결과다. 예를 들어 오스만 제국에 대해 기독교 세계의 적이나 유럽의 환자로 보지 않고, 세 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수 세기 동안 경영한 번영 국가로 기술했다. 또 이러한 지배가 가능했던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오스만 제국과 무굴 제국의 지배 엘리트를 살펴보고, 농업 구조 등을 파악하는 등 사회경제사적 분석도 시도했다.

유럽의 대서양 중심 역사에서 늘 부차적 존재로 취급되어온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역사에도 주목한다. 책은 “아프리카인들은 유럽인들이 오기 전부터 강력한 제국과 함께 독자적 교역망을 구축하고 있었다”며 “이 교역망이 없었다면 유럽과 아메리카의 발전 기반이 된 노예무역도 불가능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대서양의 역사를 에스파냐의 대서양, 포르투갈의 대서양, 영국의 대서양 등으로 나눠 파악하지만 ‘검은 대서양’이야말로 이 시기 세계사의 변화를 추동한 가장 중요한 힘”이라고 평가한다.

각 지역의 개별 역사가 하나의 세계사로 모여들 수 있었던 통로로는 당연히 바다를 꼽는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지는 않았지만 진일보한 항해술을 바탕으로 바다 넘어 각 세계가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앞장서 넓혔다. 이를 통해 미지의 대륙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도 마침내 세계사로 편입됐다. 또 바다를 통해 사람과 물자만 교환된 게 아니라 종교도 퍼져 나갔다. 이슬람과 기독교 추종자들이 크게 늘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엄청난 폭력을 서로 주고받았고, 그 비극적 결과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책은 제국 건설과 해양을 통한 상호 교류가 무수히 많은 보통 사람의 고통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전쟁 중 집단 성폭행과 고문, 약탈,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고, 새로운 바닷길 개척에 나섰던 배 안에서의 폭력과 질병이 심각했음을 전한다. 아메리카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저항과 탈출 사건도 기록으로 남겼다.

한편 책은 한국에 대해서도 하나의 장을 따로 할애해 설명했다. 우리가 원 간섭기라고 배운 고려 말에 대해서는 원 지배 아래 있었던 시기로 간주한다. 세종대왕 통치 시절을 가장 흥했던 시기로 평가하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도 특별히 주목한다. 책은 “바다에서만큼은 중국인도, 그 어떤 민족도 유럽 선박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역사상 최초의 철갑선이었던 조선의 거북선은 유일한 예외였다”고 평가한다.


정영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