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페미니스트와 마초

임석훈 논설위원

잇단 여당 지자체장 성범죄 사건에

文대통령·여권 사과없이 침묵 일관

핵심 지지기반인 여성층 이탈 가속

진정성없인 여심 되돌릴 수 없을것

목요일아침에 칼럼 사진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여성들의 지지율이 내리막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10일 발표한 8월 1주차 여론조사(3~7일 전국 성인 2,520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여성들의 부정평가가 직전 주에 비해 4.3%포인트 높아진 51.1%를 기록했다. 긍정평가는 47.8%에서 44.9%로 2.9%포인트 빠졌다. 더불어민주당도 비슷하다. 여성 지지도가 35.7%로 1주 전보다 3.9%포인트 떨어졌다.

그동안 여성은 문 대통령과 여당의 핵심 지지기반으로 꼽혀왔다. 웬만한 악재에도 여성 지지율은 크게 흔들림 없이 50~60% 내외를 유지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선거 기간에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이후 성 관련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직접 메시지를 내왔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됐음에도 재수사를 지시하고 미성년자 성 착취 사건인 이른바 ‘n번방’과 관련해서는 “운영자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아야 한다.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도 그동안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을 자처해왔다.


하지만 잇따른 여당 지방자치단체장의 권력형 성범죄 사건은 외면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018년 3월 수행비서가 성폭행 피해를 폭로하자 사퇴한 뒤 구속되고 올해 4월에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시청 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물러나 수사를 받고 있는데도 말을 아끼고 있다. 특히 자칭 페미니스트인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한 여권 대응은 여성들의 이탈 현상을 부채질했다. 외신까지 여권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의문을 제기할 정도다.

관련기사



지난달 16일 미국 CNN방송은 박 전 시장의 사망과 성추행 의혹 사건을 보도하며 문 대통령을 언급했다. CNN은 ‘대통령이 비판에 직면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 전 시장과 관련된 의혹에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CNN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던 문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성희롱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공개적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국회 개원 연설에서도 박 전 시장의 사망 사건, 고소인, 심지어는 보다 광범위한 젠더 이슈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지는 사이 여권에서 ‘마초’적 발언들이 입방아에 올랐다.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아파트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시세보다 비싸게 내놓았다는 의혹에 관해 청와대 인사가 “남자들은 부동산 거래를 잘 모른다”고 해명한 것이다. 여성 비하로 비칠 수 있는 말이다. 당장 야당에서 ‘아내 핑계를 댄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조국 전 민정수석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사모펀드 투자가 문제 되자 재산관리는 아내가 전담해 자신은 몰랐다고 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도 흑석동 건물 매입 논란이 일자 아내의 결정이라고 책임을 돌렸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말로는 여권 신장과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인식을 드러낸 여권 인사들이 적지 않다.

성범죄를 내 편 네 편 구분 없이 엄정하게 처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기편에서 범죄 의혹이 나오면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피해자에게는 사과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이 최근 보여준 태도는 이와 거리가 멀었다. 우리 편 사건에는 진상 규명보다 감싸기에 급급했다. 민주당은 박 전 시장 장례기간에 ‘님의 뜻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까지 걸었다. 이런 ‘선택적 페미니즘’의 결과가 여성층의 이반으로 나타나고 있다. 속은 가부장적인 마초면서 겉만 페미니스트인 척한 대가라 할 수 있다. 여권이 ‘보편적 페미니즘’을 외면한다면 등 돌리고 있는 여심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이든 진정성이 있어야 공감을 얻고 지속 가능하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