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일본에서 자기를 빚은 피랍 조선인들의 망향가

[책꽂이]조선가

정광 지음, 김영사 펴냄




일본 가고시마현의 ‘미야마’(옛 나에시로가와)라는 마을에는 ‘사쓰마도기 시조 박평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박평의는 일본에서 명품 도자기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사쓰마도기의 시조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일본의 보물을 만들어낸 그는 정유재란 당시 남원에서 납치돼 일본에 정착한 조선의 도공이었다. 당시 그와 함께 붙잡혀 간 도공들 중 심당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낯선 땅에서 자기를 빚으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새 이름을 받고, 직책을 맡으며 신분상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전쟁의 아픔과 망향의 괴로움은 그 어떤 대우로도 치유할 수 없었을 터였다. 피랍 조선인들이 떠나온 조국을 그리워하며 부른, 자손에 자손으로 이어져 온 노래 ‘조선가’에는 이 같은 아픔이 담겨있다. ‘날이 오늘이다/ 매일이 오늘이소서/ 날은 저물었어도/ 샐 때까지는 오늘이다/ 오늘이 오늘과 같으면/ 무슨 세상과 같을 것인가.’ 저자는 오랜 연구 끝에 조선가가 조선 시대의 가요인 ‘오나리’를 읊은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오나리는 ‘오나리 오나리 매일에 일에 오나리나’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매일 오늘처럼 평화로운 날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오나리나’의 ‘~나’는 바람·기원을 나타내는 어미였기 때문에 이 말은 ‘오늘과 같으소서’의 의미였다. 전쟁의 참화에 희생된 조선인들은 무엇보다 평화로운 일상을 바랐을 터. 그래서 이 노래가 피랍 조선인들의 가슴에 더 와 닿았고,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서로를 위로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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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82년 7월 일본 도쿄대학 문학부 서고에서 조선가 자료를 발견, 조선 도공들이 일본 사회에 미친 사회·경제적 영향력을 심층 분석해 1990년 ‘사쓰마 나에시로가와에 전래된 조선가요’를 일본어로 출간했다. 이번 신간은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책은 타향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피랍 조선인이 일본에 남긴 문화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서 조선가를 들여다볼 뿐만 아니라 이들이 일본 사회 전반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을 집중 조명한다. 저자는 조선 도공의 도자 기술 전수에 힘입어 일본 도자기는 물론 산업 전반이 크게 발전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정착했던 사쓰마 지방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메이지유신으로 대표되는 일본 근대화를 이끌었다고 주장하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를 이뤘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반격을 날린다. 1만6,800원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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