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을 시작으로 영남을 위·아래로 나눴던 ‘물 논쟁’이 올해 마무리될 전망이다. ‘맑은 물’을 위해 정부가 판을 깔고 부산과 경남, 대구와 경북, 울산시 등 5개 지자체가 참여해 30년 된 숙원 사업을 풀기로 합의하면서 지지부진했던 물 논쟁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어떤 식의 결론이든 논쟁을 마무리한다는 데는 뜻이 같지만, 기본적으로 맑은 물을 위한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인데다 저마다 사정도 달라 셈법이 복잡이다.
13일 각 지방정부에 따르면 환경부와 영남권 5개 시도지사는 지난 5일 일부 단체의 반발로 취소된 낙동강 통합물관리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12일 오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연구용역엔 낙동강 통합물관리 방안의 기본 원칙으로 ‘지역 갈등을 극복하는 유역 상생의 물관리 방안 마련’과 함께 ‘지역 상생기금 조성 및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수혜지역에서 지역상생기금을 조성해, 영향지역에서 원하는 실질적 지원사업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제안된 물 공급안은 상류의 경우 구미 해평취수장, 대구 문산·매곡 취수장 정수처리 고도화, 안동 임하댐, 대구 강변여과수 등을 3가지 형태로 조합해 사용하는 형태다. 하류는 낙동강 지류인 경남 합천 황강 하류 취수와 낙동강 본류인 경남 창녕에서 강변여과수나 인공습지를 개발하는 안이다.
먼저 낙동강 하류에서 물을 받는 부산시는 이 같은 갈등이 올해 안으로 일단락되길 바라며 인근 지자체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상생기금을 조성해 반발 여론이 거센 상류 지역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대책도 검토 중이다. 부산은 낙동강의 하류 끝에 위치한 만큼 먹는 물의 90% 이상을 낙동강 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물 문제는 낙동강 수계 지자체에서 함께 풀어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하고 보고 있다. 최근 변성완 권한대행이 “낙동강 물 문제 해결은 부산시민의 30년 숙원”이라고 말한 데서도 절실함이 엿보인다.
수질 오염 사고가 발생하면 그야말로 식수 대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지역인 만큼 물 관련 억울함도 읽힌다. 부산은 서울이나 대전 등에 비해 수질이 2~3배 정도 좋지 않은 물을 고도정수 처리한 뒤 마시고 있어 수돗물 생산단가가 전국에서 가장 비싼 수준이다. 또 낙동강 수질개선을 위한 물이용부담금 명목으로 7,387억원(2002~2018년)을 납부하며 가장 많은 돈을 내고 있지만 해택(745억원, 2.4%)은 가장 적다.
부산시 관계자는 “낙동강 수질 개선과 먹는 물 평등복지를 실천하기 위해 낙동강 수게 지차제에서 협조해 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반면 부산에 직접 물을 공급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경남도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황강 수계에 있는 경남 합천군과 거창군 단체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고, 창녕군에선 길곡면·부곡면 주민들은 지난 2011년 강변여과수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농업용수와 지하수에 영향을 미친다며 반대했다. 이런 가운데 경남도는 낙동강 본류의 수질 개선은 포기할 수 없으며, 본류를 취수원으로 삼고 있는 부·울·경 520만명의 ‘깨끗한 물 마실 권리’를 옹호하며 사업 추진을 돕고 있다. 하지만 김경수 도지사는 상생 발전에 원칙을 두면서도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게 되는 지역이 생긴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다른 충분한 보상이나 발전계획이 함께 가야된다는 것도 원칙이다”고 강조하며 조건을 명확히 했다.
대구시는 난관에 봉착한 취수원 이전의 대안으로 취수원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나 구미와 안동이 취수에 따른 용수난 등을 우려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곤혹스럽다. 이 같은 반발을 의식한 듯 권영진 대구시장은 최근 “대구시는 취수원 공동활용 지역에 대한 상생기금을 조성하고 이 지역에 필요한 국책사업 추진 및 규제 완화에 발 벗고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낙동강 상류지역 물 문제를 키를 쥐로 있는 경북 구미시는 기본적으로 취수원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경북 구미경실련이 상생 해법이라며 ‘가변식 다변화’ 방안을 제안해 눈길을 끌고 있다. 가변식 다변화란 해평취수장에서 하루 30만t을 취수하되 사용량이 줄어들 때 대구 수량을 먼저 줄이고, 갈수기 때는 취수를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시민 의견’에 방점을 찍어 온 구미시로선 구미경실련의 조건부 수용안이 또 다른 내부 갈등으로 번지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다.
태화강을 따라 도시가 형성된 울산이 낙동강과 엮인 것은 반구대암각화 때문이다. 반구대암각화는 1971년 발견되기 전인 1965년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을 막아서 만든 사연댐 때문에 여름철 우기가 되면 침수됐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노출하기를 반세기 넘게 반복하고 있다. 반구대암각화 물에서 완전히 건져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식수인 사연댐 물을 빼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결론이 나면서 물 문제에 가세했다. 인접한 경북 청도군의 운문댐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지만, 운문댐 물은 현재 대구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울산시는 어렵게 마련한 이번 논의가 어떤 식이든 마무리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올해 경북 구미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101회 전국체육대회가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차기 개최지인 울산시가 한 해 양보하며, 취소가 아닌 1년 순연되도록 도왔다. 6월 말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전국체전 순연 요청에 당시 송철호 울산시장은 “울산 시민과 경북 도민 모두에게 유익한 상생의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물’ 문제와 연계하기도 했다.
먼저 양보카드를 꺼내 들며 경북 민심을 달래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현재 부족분을 낙동강 하류 물로 채우는 비용도 부담이 되는데,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암각화의 자맥질을 막기 위해 사연댐에 있는 물을 버리고 청도 운문댐 물을 가져 오는데 ‘수혜지역’으로 분류돼 더 큰 부담을 안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암각화 훼손이 가속화되는 상황이라 이번 공론화가 순항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정부는 12일 온라인 중간보고회를 시작으로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이해관계자 별 의견 청취와 전문가 자문회의 등을 거친 뒤 9월에 최종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어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 안건에 상정, 이르면 올해 안 정부 방안을 확정 짓는다.
/부산·창원·대구·울산=조원진·황상욱·손성락·장지승기자 jj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