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사람]"현재의 삶 충실히 살면서 죽음 준비하는 '終活'도 필요"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유성호 교수>

거창하고 위대한 사람이 아니어도

주변인과 좋은 관계로 영원성 가져

"인생 잘 살았다고 축하받고 싶어"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서울대병원 연구관 내 자신의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욱기자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서울대병원 연구관 내 자신의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욱기자



“오늘도 시신 두 구를 부검하고 왔어요.”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를 가리켜 사람들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라고 부른다. 매주 수많은 시신을 부검해야 하는 법의학자의 숙명을 표현한 별명인 셈이다. 하지만 정작 그를 만나보면 죽어야 만날 수 있는 ‘저승사자’의 무서운 이미지보다 죽음을 고찰하는 ‘철학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유 교수는 우리 사회에 죽음을 진지하게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1,500명 이상의 죽음을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다. 그는 “죽음은 언제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차라리 외면하고 사는 게 마음 편하다”며 “그러나 존경받는 삶을 살아온 분들도 죽음을 회피하다 막상 죽음이 다가오면 두려움에 떨거나 남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한다”고 말했다. 즉 우리 사회에도 자신의 인생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뜻하는 ‘종활(終活)’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때 비로소 나답게 살고 나답게 죽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캐나다의 폴 웡 심리학 교수를 인용해 설명한 죽음에 대한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번째는 죽음을 ‘삶의 마지막’으로 수용하는 태도다. 인생은 유한하고 따라서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죽음에 대한 종교적 태도다. 죽음을 사후세계로 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세번째는 죽음을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간주하는 시각이다. 이 가운데 유 교수가 선택한 관점은 첫번째 것이다. 그러나 유 교수는 “자아는 우리 뇌에 있는데 커다랗고 복잡한 신경계가 멈추는 순간 자아도 끝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는 만큼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면서 죽음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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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서울대병원 연구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욱기자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서울대병원 연구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욱기자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 교수 역시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영원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오히려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라며 “톨스토이가 주변 삶과의 사랑을 통한 영원한 삶을 말했듯이 ‘나’라는 존재는 주변과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같은 위인들은 한국인이 살아 기억하는 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거창하고 위대한 사람이 아니어도 주변인들과 좋은 기억과 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의 자아는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다”며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내가 어떤 관계를 맺을지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종활이다. 저는 ‘인생을 잘 살았다’고 축하받고 싶다”고 밝혔다.

죽음에 대한 ‘정신적 태도’를 강조하는 유 교수지만 이런 그도 ‘사피엔스’로 불리는 인간 종(種)이 언젠가는 물리적으로 영생을 이어갈지 모른다고 예측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예일대에서 죽은 돼지의 뇌 일부를 36시간 동안 되살리는 실험에 성공하면서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인간 뇌로 실험하다 보면 나중에 영생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사피엔스의 시대가 끝나고 ‘트랜스휴먼’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유 교수는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영생을 이어나가는 데 대해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는 “사람들의 70~80%는 호모사피엔스로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법의학자는 다른 이의 삶을 엿보고 느끼고 그로 인해 삶을 더욱 긍정하게 할 수 있어 좋은 직업인 것 같다”고 했다. 법의학자는 그의 천직인 셈이다.

방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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