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014790)그룹이 최근 식품 유통·물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잇달아 단행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중심의 기존 사업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물류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본업과 무관한 분야에 투자 역량을 분산하는 것보다 미래 자동차 산업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금융투자업계와 재계 등에 따르면 한라그룹 지주사인 한라홀딩스(060980)는 지난 6월 물류 스타트업 아워박스에 19억9,000만원을 투자해 지분 6.5%를 확보했다. 아워박스는 온라인쇼핑몰 등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사업자를 대상으로 물류를 대행해 주는 기업이다. 냉동·냉장 식품에 특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라홀딩스는 지난 2015년 현대코퍼레이션솔딩스에 투자한 이후 한동안 지분 투자를 중단했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7월 밀키트 업체 마이셰프에 15억원을 투자해 지분 10.5%를 확보했고 최근에는 자동차 구입 플랫폼 스타트업 비마이카에 20억원을 투자했다. 최근 투자 3건 모두 큰 틀에서 물류나 유통 관련 분야로 볼 수 있다.
한라홀딩스와 달리 핵심 계열사인 만도(204320)는 본업인 자동차 부품 관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5월에는 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하는 레이더 제조 스타트업 비트센싱에 10억원을 투자해 지분 3%를 확보했다. 지난해에는 총 9건에 400억원의 투자를 진행했는데 직간접적으로 부품사업과 관련있다. 더카본스튜디오(1억원)가 대표적이다. 자율주행 관련은 스프링클라우드(5억원)·뉴빌리티(1억원)·맥스트(20억원)에 베팅했다. 인도네시아의 ‘타다’로 불리는 모빌리티 유니콘 고젝(322억원) 소수 지분도 확보했다.
한라홀딩스는 자동차 부품사 만도가 그룹 주력이다. 그룹 매출의 80% 이상이 만도에서 나온다. 만도는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이를 유통하는 만큼 물류와 유통에 관심이 많을 수 있다. 식품 물류와의 시너지 가능성을 살피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한라홀딩스가 신사업이 아니라 주력인 만도에 대한 지원 사격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도는 자동차 브레이크와 조향장치, 서스펜션을 생산한다. 전기차 시대가 오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부품들이다.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한라홀딩스는 글로벌 부품사 업계에서 매출 기준으로 세계 49위권이다. 국내 경쟁업체 현대모비스는 세계 7위, 현대위아는 37위로 평가받는다.
만도는 올해 상반기 누적 매출이 2조3,200억원으로 전년대비 19.2% 감소했다. 영업손실은 573억원으로 전년(838억원) 대비 적자 전환했다. 1,023억원의 당기 순손실도 기록했다. 신종코로나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 차량 생산이 줄어든 것이 이유다. 만도는 전체 매출의 55%가 국내에서 나온다. 미국과 인도 등 시장을 다변화 하고 있다지만 글로벌 부품사로서의 위상을 가져가기에는 부족한 모습이다. 높은 인건비의 국내 부품 생산 구조 역시 국내 비중이 높은 만도가 고부가가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경쟁력 강화에 더욱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래 전기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서는 핵심 부품에 대한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며 “지주사까지 나서서 주력 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