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하면 으레 숭고함이나 희생, 따뜻함과 같은 한정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모성은 강하고, 그래서 아름답다지만, 한편으로는 손쉬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머니들은 완벽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자녀의 불행을 넘어서 가정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요구받는다. 신간 ‘숭배와 혐오’는 페미니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받아온 영역인 ‘어머니 연구’에 집중하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성 신화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페미니스트 학자인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어머니는 공적·정치적 세계에서 배제된 존재라는 점이다. 실제로 영국에서 매년 5만 4,000여 명의 여성이 임신을 이유로 일자리를 잃고, 어머니가 된 여성 중 77%가 일터에서 차별과 모욕 등 부정적인 대우를 경험한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무자비한 이윤 추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깊은 곳엔 무의식적인 혐오가 흐르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나에게 의존적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 ‘모두가 여자에게서 태어난 인간’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마음이 혐오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엘레나 페란떼의 ‘나뽈리 4부작’을 소개한다. 페란떼의 소설 속 어머니들은 이상적인 모성과는 정반대다. 모녀 관계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고, 아이들은 어머니들에게 버림받고 심지어 어머니가 남자를 만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모성의 양가성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모성 신화를 깨뜨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예리한 통찰이 돋보인다.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