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으로 모든 게 불확실했지만, 오직 한 가지만 보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음악의 힘’이다. 지난 17일 개막한 롯데콘서트홀 주최 ‘클래식 레볼루션 2020’의 음악감독을 맡은 독일 출신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사진)은 음악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나누기 위해 2주간의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그렇게 한국을 찾았다. 이번 내한은 “(그럴) 가치가 충분한 선택이었다”는 그를 2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났다.
클래식 레볼루션은 롯데문화재단이 ‘한국을 대표하는 여름 연례 음악 축제’를 목표로 시작한 행사로, 첫 회인 올해 공연은 지난 17일 개막해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영국 BBC 프롬스처럼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춰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취지가 담겼다. 올해는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을 주제로 프로그램이 꾸려졌다. 전체 프로그램을 구성한 포펜은 “짧은 기간에 베토벤 작품의 핵심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하기에 프로그래밍이 쉽지 않았다”며 “아홉 개의 교향곡과 기악 협주곡 작품 전곡 외에 ‘에그 몬트’, ‘웰링턴의 승전’ 등 덜 연주되는 작품을 선보이려고 노력했고, 베토벤이라는 음악가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실내악으로 그의 생애 단계별 작품을 조명하는 시간도 마련했다”고 전했다.
축제가 열리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주최 측의 걱정에도 포펜은 “인터넷이 연결되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면 된다”며 2주간의 자가 격리를 감수하고 한국에 들어왔다. 이런 시대일수록 클래식, 특히 고난에 굴하지 않은 베토벤의 음악이 필요하다는 게 포펜의 생각이다.
축제가 시작된 후에도 하루하루 일정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대전·인천·서울시향의 공연이 취소됐고, 지난 19일 예정됐던 KBS교향악단의 무대는 오전 리허설까지 끝낸 상황에서 당일 취소됐다. 지휘자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던 포펜의 상실감도 컸다. 그러나 그는 “베토벤의 작품에서는 난청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밝은 정서로 접근한, 철학적인 의미의 유머도 발견된다”며 “1년간 준비한 축제 일정이 어그러져 아쉽기도 하지만, 내년 축제를 위한 더 아름다운 가능성을 쌓는 계기로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웃어 보였다.
내년 축제에 대한 구상도 귀띔했다. 그는 “올해는 베토벤 한 명에 집중한 프로그램이라면, 내년에는 두 개의 트랙으로 공연을 이끌려 한다”며 “내년 100주년을 맞는 피아졸라와 그가 영향 받은 음악가를 조명하고, 올해와 연결해 베토벤을 롤모델로 삼았던 요하네스 브람스의 작품을 실내악으로 선보이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롯데콘서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