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외교정책을 이끄는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이 22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을 만나 최근의 미중 관계와 중국 측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청와대가 22일 밝혔다. 앞서 싱가포르 방문길에서 “국제사회의 공평과 정의를 수호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양 위원은 우리를 상대로도 미중 갈등 관계 속에서 ‘우군’이 되어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양 위원이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방문한 것 자체가 하반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구체 협의하기 보단, 미중 관계와 관련된 중국의 명확한 입장을 전달하는 데 더 주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에 이어 중국의 압박 수위도 높아지면서 우리의 ‘줄타기 외교’는 더욱 아슬아슬해지는 형국이다.
미중 갈등에 대한 양 정치국원의 이날 입장에 대해 서 실장은 ‘미중 간 공영과 우호 협력 관계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실제 이날 오전부터 4시간에 걸쳐 진행된 양측의 회담과 1시간 50분간의 오찬에서는 더 내밀한 얘기가 오고 갔을 것으로 관측되나, 청와대는 양측의 원론적인 입장만 외부로 공개했다.
한중 관계 전문가인 우수근 콘코디아 국제대학교 대외교류 부총장 이날 회담 결과와 관련해 “양 위원은 한국이 미국 편에 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면서 “반면, 서 실장은 미중 갈등 문제는 미중 양국이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입장을 애매 모호하게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양측은 아울러 △한중 FTA 2단계 협상 가속화 △RCEP 연내 서명 △제3국 시장 공동진출 △신남방·신북방정책과 ‘일대일로’의 연계협력 시범사업 발굴 △인문 교류 확대 △지역 공동방역 협력 △WTO 사무총장 선거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폭넓은 공감대를 이뤘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최근 개정된 ‘한미 미사일 지침’ 등과 관련한 논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양측이 밝히지 않았다.
이날 청와대가 공개한 양측의 논의는 주로 ‘경제’와 관련한 것으로 미중 갈등 속 한중 간의 경제 관계를 더욱 끈끈히 하려는 중국 측의 의도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화웨이 살리기’ 문제가 이날 서 실장과 양 위원 회담 테이블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는 한국의 LG유플러스를 꼭 짚어 지목하면서 화웨이 장비 사용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선출을 중국이 지원해 달라는 우리 측의 요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측의 최대 관심사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진전된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선 미국 대선 이전에 한국과 중국 모두 섣불리 움직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서 실장은 이날 우리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양 위원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우리 측과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을 해나갈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전했다.
양측은 아울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사태가 안정화되는 대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을 조기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 단 방한 시기 등 구체 사안에 대해서는 외교 당국간 협의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 강 대변인은 “중국 측이 한국은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고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양 위원은 또 조속한 시기 서 실장의 중국 방문을 초청했고, 외교채널을 통해 이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우 부총장은 “서 실장을 초청했다는 것 만으로도 양 위원의 방한은 의미가 있다”면서 “카운터 파트인 서 실장에 대한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평가로 볼 수 있고, 시진핑 방한을 제대로 협의해가자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윤홍우·허세민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