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기업인을 투사로 만드는 사회

홍병문 국제부장

홍콩보안법 물리력으로 밀어붙이고

민주화운동 탄압한 시진핑 지도부

국제사회서 리더십에 비관론 커져

독선·오만에 취한 권력엔 미래없어

홍병문 국제부장



칭찬에 인색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이례적으로 아낌없는 칭찬을 보낸 인물이 있다. 홍콩의 기업인 지미 라이다. 세계적인 의류업체의 창업자이자 언론사 사주인 지미 라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확실히 용감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10여일 전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이틀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그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행운을 빈다”는 덕담까지 남겼다. 비난의 독설로 유명한 트럼프에게 흔치 않은 격려와 칭찬이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강행한 후 국제사회에서는 반체제 민주화 운동을 하는 홍콩 인사들에 대한 본토 공산당 지도부의 탄압이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지미 라이 같은 기업인이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은 많지 않았다. 그가 홍콩보안법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일각에서 거론하기도 했지만 기업인보다는 정치인들이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지미 라이의 체포는 뒤집어보면 사회와 기업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홍콩의 반중 민주화 운동에 대한 시진핑 지도부의 반감과 불만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시아의 루퍼트 머독’으로 불리는 지미 라이는 국제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에 가깝다.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창립자라는 점이 많이 부각되기는 했지만 홍콩과 중국 재계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그는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의 창업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1948년 중국 광둥성의 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마오쩌둥이 1949년 톈안먼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기 1년 전이다. 신중국의 태동으로 집안이 몰락하자 초등학생 때 낚싯배를 타고 홍콩에 밀입국한다. 의류 공장에서 일하면서 영어공부를 하고 성공을 꿈꾸던 그는 파산한 의류 공장을 인수해 33세에 지오다노를 창업했다. 청년 시절 방문했던 뉴욕에서 피자집 ‘지오다노’라는 이름을 보고 머릿속에 담아뒀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도 많은 중국인이 지오다노를 해외 유명 브랜드라고 생각하고 구매할 정도로 그가 지은 이름은 회사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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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기업인에 머물 뻔했던 지미 라이의 운명을 바꾼 것은 1989년 중국 톈안먼 사태였다고 한다. 시위대를 향해 중국군이 발포하는 것을 본 지미 라이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분노했고 총으로 맞설 수 없다면 펜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해 언론사를 세웠다. 그가 창립한 빈과일보와 주간지 넥스트매거진은 최근 서방 언론과 중국 베이징의 서방 특파원들이 주목하는 매체로 성장했다.

지미 라이를 체포해 겁을 주려던 중국 지도부는 그가 되레 홍콩의 반중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르는 것에 당혹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라이 회장은 보석 석방 이후 “어떤 압박도 버텨낼 수 있다”며 투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런 시련이 닥칠 줄 미리 알았더라도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가뜩이나 홍콩보안법 강행으로 중국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국제사회에서는 시진핑 리더십에 대한 우려와 비관론이 점점 팽배해지고 있다. 홍콩보안법을 물리력으로 강행시키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시진핑 지도부가 이번 체포 사태를 계기로 태도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 안팎에서는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대학생들과 직장인·지식인 그리고 기업인들을 투사로 만들고 위정자들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 사회가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미래에 대한 어떤 그럴싸한 포장과 거짓 선전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평범한 기업인과 지식인·평론가들을 투사로 만드는 권력에 미래는 없다. 이는 독선과 권력의 오만에 취한 위정자가 지배하는 사회 모두에 해당하는 말이다. hbm@sedaily.com

홍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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