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다 주겠다" 큰소리치더니…2차 재난지원금 얘기 쏙 들어간 이유는

홍남기 부총리 24일 국회예결위서 소신 발언

"100% 빚내 충당해야…전국민 지급 어려워

세차례 추경에 재정 한계…상황 보고 판단해야"

내년 예산안 마무리되는 내달께 다시 논의할듯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우려에 따른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논의와 관련해 재원은 전액 빚을 내 충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차 재난지원금 지급 가능성을 묻자 “깊이 있게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향후 일주일 간 코로나19 확산 동향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정·청은 지난 23일 2차 재난지원금 지급 여부를 논의했지만 방역 상황을 보고 추후 논의로 미뤘다.


홍 부총리는 이어 “만약 앞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게 된다면 100% 국채 발행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차 재난지원금은 정부가 모두 빚을 내 조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는 정부가 부담한 12조2,0000억원 중 10조원 이상을 지출 구조조정으로 마련해 국채 발행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특히 “(전 국민에 지급했던) 1차 때와 같은 형태로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말해 여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전 국민 지급안에 분명히 반대를 표하는 한편 재정 여력과 경제 효과를 고려한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에 대한 소신을 강조했다. 그는 추가로 지출 예산을 줄이는데 대해 “3차례 추경을 편성하면서 코로나19 여파로 집행되기 어려운 사업 중심으로 25조원 정도를 구조조정했다” 며 “남아있는 올해 예산이 별로 없어 구조조정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 가늠 어렵고 재정 바닥…섣불리 지원땐 5차추경 부담도


2515A03 GDP대비 국가채무비율 추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사태로 급물살을 타던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정부와 여당, 청와대가 일단 현 시점에서 논의하지 않기로 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소득 하위 50%, 추석 전 지급 등 대상과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되기도 했지만 코로나19 재확산 상황이 상당히 불확실한데다 재정 여력에 한계가 온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야당에서 먼저 어젠다를 꺼냈다는 점을 거여(巨與)가 의식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24일 여권과 정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저녁 열린 비공개 고위 당정협의회에서는 현 시점을 방역의 중대 고비로 보면서 경제 피해 대책은 추후 판단하기로 했다. 12일 수해 복구를 위한 4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이 고위 당정청 회동에서 막힌 데 이어 두 번째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재원이 많이 들고 지금 상태에 대한 예측이 어렵다”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점검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피해 상황 불확실성 높아=우선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피해 상황이 가늠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로 풀이된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이달 말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도 23일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400명대에 육박했지만 아직 정점이 아니라고 본다”며 현재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해 “이번 주까지 상황을 보고 경제 추이를 감안해 추후 판단하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만약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상향된다면 경제가 올 스톱되기 때문에 이에 병행하는 재난지원금과 고용·실업대책 등 대규모 지원책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2차 지원금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지금 시점에서 지원 방안 윤곽을 확정해버리면 한두 달이 지나 또다시 5차 추경을 거론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이 길어지면 제조업 타격에 대응해야 한다”며 “전방위적 종합대책을 염두에 두고 재정 여력을 함께 검토해야지, 일시적 내수 진작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떨어진 재정 여력…정밀한 효과분석 선행돼야=허약해진 재정건전성 문제도 크다. 올해 59조원 규모의 세 차례 추경을 거치며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11조5,000억원까지 불어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38.1%에서 올해 43.5%로 치솟는다. 2차 재난지원금을 주려면 4차 추경예산을 편성해야 해 또 100% 빚을 내는 적자국채를 찍어야 한다. 재정에 한계가 있는 만큼 경제 상황이 악화할 경우에 대비해 재정 여력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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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지원 대상과 규모를 정하는 것부터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 핵심 인사들은 또다시 전 국민에게 현금을 뿌리는 방안은 극도로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경제부총리 역시 “2차 재난지원금은 1차 때와 같은 형태로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2·4분기 가계동향 통계를 보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줬더니 오히려 가구원 수가 많은 고소득 가구에 더 많은 돈이 돌아갔다. 소득은 늘었어도 저축을 하면서 소비진작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재정상황을 고려해 최적의 효과를 내도록 추가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내년 예산안 발표 후 다음달께 논의 재개될 듯=시기적으로도 내년 정부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있는 만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 있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9월 초 국회에 예산안을 내고 그때까지 코로나19 재확산 상황을 보면서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이 경우 코로나19 피해가 장기화된다고 보여지면 내년 예산안에도 관련 분야 예산을 추가로 증액할 수 있다.

그럼에도 2차 재난지원금에 대해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시기의 문제일 뿐 다음달에는 본격적으로 검토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지급을 불과 며칠 만에 기정사실화하면 ‘매번 확진자가 대규모로 발생할 때마다 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생길 수 있어 당 지도부의 우려가 크다”면서도 “이번주 내로 확진자 증가 추세가 꺾이지 않는 한 지도부도 더 이상 방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차 추경과 2차 지원금 이슈를 먼저 꺼냈다는 측면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50%" VS "100%"… 이와중에 지급방식 두고 與 '불협화음'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2차 재난지원금 논의를 중단한 가운데 당 안팎에서 지급 방식을 놓고 불협화음을 보이고 있다. 진성준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선별 지원의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언급하는 수준이었던 논란이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유력 대선주자들까지 나서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면서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이 지사는 24일 “2차 재난지원금의 선별 지급 주장은 보수야당의 노선”이라며 전 국민 대상 지급을 앞장서 주장했다. 그는 “선별 지원 방식은 상위소득 납세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자 여당의 보편복지 노선에서 보면 어불성설”이라며 “(민주당 의원들의) 재난지원금을 일부만 지급하거나 전 국민에 지급할 재원을 하위 50%에게만 2배씩 지급하자는 주장은 헌법상 평등 원칙을 위반하고 국민 분열과 갈등만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그러나 이낙연 의원은 이 지사와 상반된 목소리를 냈다. 이 의원은 “올해 봄 1차 지급 때도 지금 같은 논의가 있었으나 행정준비와 국민수용성 등의 고민 때문에 전면지급을 선택했다”며 “어려운 분들을 더 두텁게 돕는 차등지원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 의원은 “지금은 코로나19 극복에 전념해야 할 시기인 만큼 재난지원금 논의는 (확진자 발생이 줄어든 시점) 이후로 미루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평소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라는 경력 탓에 주요 현안마다 개인적 입장을 밝히기를 꺼려왔지만 이번만큼은 소신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향후 당내 여론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난지원금 조달과 지급 방식 등을 둘러싼 불협화음은 현직 최고위원과 차기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에 속한 의원들에게서도 생겨나고 있다. 차기 최고위원으로 확정된 양향자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이지만 (코로나19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며 “재난지원금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신중하게 볼 필요는 있다”고 지급 대상과 관련해 신중론을 펼쳤다. 특히 양 의원은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에 대해 “이번만큼은 지원대상에서 정말 필요한 분들로 한정 지어야 하지 않나. 그래서 기준점 마련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다”고 선별적 지급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반면 설훈 최고위원은 이날 또 다른 라디오 방송에서 지급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1차 때도) 결국 전 국민을 상대로 했다. 선별하는 데 행정적 과정이 비용으로 들어가고 불합리한 내용도 나온다”며 “차라리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한재영·구경우·황정원·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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