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어려워질 때에 대비해 재정을 아껴야 한다. 나중에는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지난 3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정하는 비공개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이런 취지의 논리를 펴며 소득 하위 50% 지급을 고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런 기재부의 뜻은 끝내 꺾였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실제 홍 부총리의 우려처럼 코로나19 사태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바라보는 수준까지 악화했고 지금은 3차 추경을 넘어 4차 추경을 논의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새 나라 곳간은 바닥을 드러냈다.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올 상반기 110조5,000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3차 추경 기준 국가채무는 839조4,000억원에 달해 국내총생산(GDP)의 43.5%로 껑충 뛰었다. 여기에 4차 추경까지 편성할 경우 전액 빚으로 충당해야 한다. 1차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10조원가량을 기존 예산 구조조정을 통해 조달했기에 더 이상 쥐어짜낼 돈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4차 추경을 둘러싼 백가쟁명식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는 선별지급론을 놓고 허비할 시간이 없다”며 전 국민 대상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촉구하고 있으며 여당 내에서도 공무원 임금을 삭감해 재원을 마련하자는 등의 주장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기에 야당까지 합세하면서 기재부 입지는 전보다 더 좁아진 모양새다.
여당과 청와대가 “일단 방역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4차 추경 논의를 잠시 보류했지만 이는 코로나19 확산 추이를 지켜본 뒤 추경 규모를 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최종 판단만 늦췄을 뿐 시간문제인 셈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 여겨졌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처럼 성급히 4차 추경에 나섰다가는 다시 5차·6차 추경이 거론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홍 부총리는 “3차 추경도 9조원 이상 집행이 안 됐고, 무조건적 재원 확보가 능사는 아니다”라며 “4차 추경 논의는 성급하다”고 했다. 이번만큼은 정치권도 추경 신중론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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