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빚투' 사상 최대인데…"신용융자 금리 낮추라"는 정부

당국, 증권사에 신용융자 금리 인하 요구

은행 아닌데 은행과 비교…억울한 증권사

단기 고수익 좇는 자금에 금리혜택, 맞나

개입 기대 효과 적고, 외려 빚투만 늘 수도




금융 당국이 요지부동인 증권사 신용융자 금리 인하를 주문하며 신용융자와 관련한 논쟁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당국은 기준금리가 낮아진 만큼 신용융자 금리도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신용융자 금리의 재원과 수요자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지시라는 반응이다. 아울러 안 그래도 신용융자가 몰리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가격을 낮추라는 정부 방침이 빚투 확대로 이어지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신용융자 금리 인하하라’ 직구 날린 금융위원장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업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업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진행된 증권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참여한 5개 증권사 사장에게 신용융자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은 위원장은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하는 동안 신용융자 금리를 전혀 변동시키지 않은 증권사들이 있다고 한다”며 “개인 투자자들이 불투명성과 비합리성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이날 증권업계 사장과의 간담회 이후 “9월 중 금융 당국과 업계가 TF를 구성해 개선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당국 개입에 의한 신용융자 금리 인하를 기정 사실화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크게 낮췄음에도 대부분 증권사의 신용융자는 그대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하자 한은 지난 3월(0.50%)과 5월(0.25%) 두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50%로 0.75% 낮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융자 금리를 낮춘 증권사는 전체 28개 증권사 중 5개에 불과하다. 개인투자자들이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가 늘며 신용거래 융자는 지난 26일 15조7,056억원으로 연초 대비 2배가 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 대출을 많이 시행한 증권사는 그만큼 수익을 냈다.

◇은행 아닌데 은행과 비교…억울한 증권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업계 간담회에 앞서 증권사 대표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부사장,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장석훈 삼성증권 대표이사, 이현 키움증권 대표이사,  오익근 대신증권 대표이사./권욱기자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업계 간담회에 앞서 증권사 대표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문성필 한국투자증권 부사장,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 장석훈 삼성증권 대표이사, 이현 키움증권 대표이사, 오익근 대신증권 대표이사./권욱기자


하지만 증권업계는 재원과 이용자층의 성격이 다른데 신용융자 금리를 은행 신용 대출 금리와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예대마진을 주 수익으로 삼는 은행과 달리 대부분 증권사는 수신기능이 없다.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받는 유통융자와 단기 CP와 회사채 등을 통해 조달하는 자기자본을 활용하는 자기융자로 나뉘는데, 통상 재원 마련의 조달 금리가 2% 초반 수준이다. 증권사들은 여기에 가산금리를 붙여 고객에게 신용융자를 제공한다. ‘금융투자회사의 대출금리 산정 모범규준’에 따르면 증권사는 조달 금리에 △유동성프리미엄 △신용프리미엄 △자본비용 △업무원가 등 제반비용 △목표이익률 등을 감안한 가산금리를 붙인다. 이 금리가 단기는 4~6%, 3개월 이상은 7~9% 수준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여신과 수신이 본업인 은행과 달리 증권사도 대출할 돈을 어디선가 가져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조달비용이 든다”며 “주식을 담보로 하기는 하지만 간편한 절차를 거쳐 대출을 내주기 위해서는 해당 리스크와 비용도 금리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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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고수익 좇는 자금 위한 금리 개입, 맞나

증권사 신용융자 대출의 성격이 생활자금 등으로 활용되는 은행의 신용대출과 다르다는 점에서 정부가 가격 개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용융자는 주식 매매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업계에서는 현재 신용융자 수요가 주식 중에서도 변동성이 큰 종목에 대한 3개월 이내의 단기 자금 수요가 대부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시가총액 1조원 미만 중소형주의 신용잔고가 10조원으로 전체의 73%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도 지난 6월 발간한 ‘최근 개인투자자 주식 매수의 특징 및 평가’ 보고서에서 “신용융자 잔고가 크게 증가한 주식은 주로 바이오ㆍIT 업종 주식과 같이 최근 주가가 급등한 기업”이라며 “향후 증시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으므로 개인투자자는 레버리지 활용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쉽게말해 개인 투자자들이 10% 이자를 내고도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수십, 수백% 기대수익률의 고변동성 주식을 사기 위해 신용융자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빚투가 늘며 증권가에서 빌려줄 재원이 떨어져 대출을 중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위한 당국의 금리 혜택 언급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금리도 가격인데 주택자금이나 생활자금처럼 생활의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인 투자 부분에 정부가 개입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금리 인하 실익 적고 빚투만 조장할 수도

고위험 고수익을 위해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투자자들을 위한 금리 혜택을 줬다가 신용융자가 더 늘어날 경우, 증시 변동성 확대되면 이는 증권사의 손실로 이어지고 나아가 다른 투자자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군다나 증권가에서는 신용융자 금리 인하의 실익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황세운 상명대 DNA랩 객원연구위원은 “신용융자는 대출의 목적이 레버리지를 통한 고수익의 실현이고 다른 대출에 비해 기간이 대부분 단기라 빌리는 사람들이 금리 1~2%에 민감하지 않다”며 “금리가 낮아지면 좋긴 하겠지만, 증시가 호황이어서 투자자들은 서로 빌리려고 하고 증권사는 빌려줄 재원이 없는 상황인데 단순히 금리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정부 개입이 필요한 시장 실패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신용융자 대출 인하로 빚투의 주범으로 몰리지 않을까도 우려하고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금리를 낮춰서 빚투가 더 늘면 대출을 내 준 증권사가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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