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승부 경험이 있는 선수(김한별)와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이재경)가 연장전에서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우승컵의 향방을 점치기 어려운 흥미로운 대결의 승리자는 김한별(24·골프존)이었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2년 차 김한별이 신설 대회인 헤지스골프 KPGA 오픈(총상금 5억원)에서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김한별은 30일 경기 포천의 일동레이크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8개의 버디를 뽑아내는 무결점 플레이로 8언더파 64타를 쳤다.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를 기록한 그는 이재경(21·CJ오쇼핑)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 1차전에서 버디를 잡아 우승상금 1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 상금랭킹 23위로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보냈지만 신인상을 받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던 김한별은 두 번째 시즌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며 젊은 강자의 등장을 알렸다.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활동하면서 2017년 호심배 골프선수권과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 등 굵직한 대회에서 우승한 그는 2018년 프로에 입문했다. 지난해 13개 대회 출전해 11차례 컷 통과 등 꾸준한 플레이를 펼친 김한별은 상반기까지 신인상 포인트 1위를 달리다 하반기 경쟁자들에게 추월을 허용해 5위로 마감했다. 당시 신인왕에 오른 선수가 바로 이재경이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지난해 목표로 세웠던 신인왕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올해 우승을 향한 동기 부여의 계기로 삼겠다”고 했던 김한별은 공교롭게도 이재경과 연장 접전을 펼친 끝에 첫 우승의 꿈을 이뤘다.
이날 김한별의 전반 플레이는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공동 선두 이재경과 함정우(26·하나금융그룹)에 1타차 뒤진 공동 3위로 출발해 이들과 동반한 김한별은 9개 홀에서 7개의 버디를 쓸어 담는 맹타를 휘둘렀다. 9번홀(파4) 장거리 버디 퍼트 등 길고 짧은 퍼트가 ‘쏙쏙’ 홀을 찾아들었다. 후반은 이재경의 우세였다. 전반에 4타를 줄인 이재경은 김한별에게 2타 차 리드를 허용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김한별이 13번홀(파4) ‘이글성 버디’ 1개에 묶인 사이 11번과 15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1타 차로 추격했고, 17번홀(파5)에서 폭발적인 3번 우드 티샷과 아이언 샷으로 2온에 성공한 뒤 2퍼트로 가볍게 버디를 보태 기어코 균형을 이뤘다.
18번홀(파4)에서 벌어진 첫 번째 연장전에서는 이재경이 장타를 터뜨리며 후반의 기세를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김한별이 더 먼 거리에서 먼저 친 두 번째 샷을 홀 3m에 올린 반면 이재경은 가깝게 붙이지 못하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재경의 버디 퍼트가 홀을 지나치자 몇 차례 심호흡을 한 김한별은 침착하게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뒤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포효했다.
정규 라운드 18번홀의 값진 파 세이브가 우승의 바탕이 됐다. 두 번째 샷을 그린 뒤편 깊은 러프에 보낸 김한별은 웨지 샷을 홀 1m에 붙여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 겨울 훈련 동안 약점이었던 러프와 벙커 등 위기관리 능력을 키우고 체력을 보완한 결과였다.
우승으로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1위와 상금 3위에 오른 김한별은 “이렇게 우승할 수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부모님께 많이 기대고 투정도 많이 부렸는데 좋은 아들이 되겠다”며 눈물을 쏟은 뒤 “올해 목표가 제네시스 포인트 15위 이내에 드는 것이었는데 제네시스 대상 수상으로 바꾸고 다승도 노려보겠다”며 활짝 웃었다.
지난해 9월1일 부산경남 오픈 제패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을 노린 이재경으로서는 14번홀(파4)에서 놓친 1.5m 버디 퍼트와 짧게 친 연장전 두 번째 샷이 아쉬웠다. 우승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이번 시즌 근육을 불려 샷 거리를 늘린 이재경은 ‘영파워 대표주자’의 일원임을 다시 증명했다. 유송규(24)가 18언더파로 단독 3위에 올랐고 지난주 GS칼텍스 매경오픈에 이어 2주 연속 우승에 도전했던 이태희(36)와 1, 2라운드 선두에 자리했던 호주교포 이원준(30)이 나란히 16언더파 공동 4위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