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역사문제를 놓고 사사건건 충돌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격 사임하면서 미 조야에서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는 동북아 지역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대 중국 견제를 위한 핵심과제가 한미일 연대 강화라는 미국 내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타임스(NYT)는 29일(현지시간) 아베 총리 후임자의 대내외 과제를 분석한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일본의 다음 총리가 한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분석했다.
호주국립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로런 리처드슨은 NYT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무역전쟁 등을 둘러싼 한일 분쟁이 오래갈수록 “동북아 지역의 동맹 약화로부터 이득을 보는 유일한 승자는 중국과 북한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모두 역내 자유민주주의 법치 질서의 유지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고, 중국은 여기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며 “하지만 미국의 역내 태세가 약화된 상황에서 한국 또는 일본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중국에 맞설 방법은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일본의 차기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아베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를 한국 정부와 협상하며 혐한 인식이 커졌다는 설이 나오는 만큼 차기 총리는 사감(私感) 없이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만약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장기집권에 나선다면 아베 총리와는 다른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아베의 스타일을 보면 역사수정주의였다. 지난해에 했던 수출규제 조치와 평화프로세스 훼방꾼 이미지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스가 장관이 아베 스타일대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포스트 아베’ 시대에서도 한일관계 전망이 밝지 않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아베 총리의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보수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자민당 내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다수당 총재가 중의원 투표로 결정되는 총리 역할도 맡는다. 실제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악화 등 긴급상황이라는 점을 내세워 전당대회가 아닌 양원(참의원·중의원) 총회를 통해 새로운 총재를 선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한일관계 전망을 어둡게 한다. 당원이 빠진 양원 총회로 후임자를 선출할 경우 한국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은 대권에서 멀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