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양성대장염 재발로 사임 의사를 밝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임을 놓고 벌써부터 경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포스트 아베’로 누구를 밀지를 두고 집권 자민당 내 파벌들의 물밑싸움도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 총리관저 주변에서는 아베 총리의 2차 집권기간에 정부 대변인이자 아베의 입 역할을 했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차기 총리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가 장관이 차기 총리로 선출될 경우 건강 문제로 물러나는 아베 총리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0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스가 장관이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에게 전했다고 관계자가 밝혔다. 스가 장관은 최근까지 자신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거듭 부인했으나 불과 며칠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아베 정권 초기부터 8년 가까이 위기관리에 앞장선 스가 장관은 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측근 그룹을 형성해왔다. 그는 속한 파벌이 없지만 자민당 내 의원 약 30명이 참여하는 ‘스가 그룹’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니카이 간사장이 이끄는 니카이파도 스가 장관을 밀어줄 가능성이 점쳐진다. 올해 6·7월 니카이 간사장이 “다음 총리는 어떤가. 한다면 응원하겠다”고 물어보자 스가 장관은 “고맙다”고 반응하며 거부의 뜻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더욱이 니카이 간사장은 차기 총재 선거방식에 관한 결정 등을 일임받아 ‘킹메이커’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스가 장관이 출마 의욕을 드러내자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등 다른 ‘포스트 아베’ 유력 후보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당초 아베 총리는 후임으로 기시다 정조회장을 점찍었다는 관측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스가 장관을 의중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다 정조회장이 이끄는 파벌에는 의원 47명이 속해 있어 다른 파벌과의 연합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중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이시바 전 간사장의 파벌 역시 소속의원이 19명에 불과하다. 이시바 파벌 내에서는 “스가 장관이 출마하면 이기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관건은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의 선택이다. 아베 총리가 몸담은 호소다파의 경우 아베 총리의 의중대로 스가 장관을 밀어줄 가능성이 상당하지만 아직은 불확실한 상태다. 호소다파 내 시모무라 하쿠분 선거대책위원장과 이나다 도모미 간사장 직무대행도 출마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다만 다음달 중순 내에 차기 총리가 선출되는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일본 정가의 분위기는 스가 장관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NHK방송에 따르면 자민당은 오는 9월13~15일께 양원의원 총회를 열어 당원 투표를 생략하고 의원과 각 도도부현의 대표 투표로 새 총재를 선택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출마 유보 의사까지 내비쳤다. 그는 “당원들이 뽑는다는 정통성이 없다면 강력한 정치를 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은 약식선거 방침을 일종의 ‘밀실정치’라고 비판했다.
CNBC는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을 인용해 “아베 총리의 사퇴에도 아베노믹스가 종식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톰 리어머스 일본전문 이코노미스트는 “자민당에서 후계자가 나오는 만큼 아베 총리 퇴진의 경제적 의미는 작다”고 설명했다. 반면 바녹번글로벌포렉스의 마크 챈들러 최고시장전략가는 “(아베 총리 재집권 이후) 7년 이상의 금융완화 정책에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데다 저금리 장기화로 금융기관의 경영상황이 악화했다”면서 “차기 총리는 금융완화에 적극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전했다. 닛케이는 “아베 총리 사임으로 일본증시에 대한 해외 투자가의 관심이 떨어졌다”면서 “이들이 한국이나 홍콩증시로 갈아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