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SF) 영화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을 통해 미래 스마트시티를 엿볼 수 있다. 건물과 도로가 가볍고 날렵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자율주행차·로봇·스마트팩토리 등이 어우러진 이곳에는 초고강도·고내구성의 ‘슈퍼콘크리트(Ultra High Performance Concrete·UHPC·초고성능 콘크리트)’가 쓰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가 공동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9월 수상자로 선정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김병석 박사는 바로 이런 200년 수명의 슈퍼콘크리트를 개발했다.
김 박사는 자갈 대신 마이크로·나노 물질과 강섬유를 사용해 조직이 치밀한 초고성능 콘크리트를 개발하고 ‘슈퍼콘크리트’라 명명했다. 일반 콘크리트와 비교하면 강도는 압축강도 80~180메가파스칼(㎫)로 5배에 달하고 수명은 200년이 넘어 4배나 향상됐다. 제조원가는 해외 동급 콘크리트의 절반도 안 된다.
그는 “영화 ‘토탈 리콜’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으로 초연결된 스마트시티를 볼 수 있다”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환경을 지원하며 다양한 디자인 구현, 높은 내구성, 편리한 시공기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기존 콘크리트와 고강도 강철 소재의 장점을 합해 수명이 길고 강도가 세며 다양한 구조 표현이 가능한 슈퍼콘크리트가 유용하다. 그는 “콘크리트와 철근 물량을 30% 이상 줄이고 공사비도 기존 경쟁기술 대비 10% 이상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이 혁신기술을 아무도 채택하지 않으려 해 건설연 빌딩 간 보도 사장교를 지어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교량용 부재를 만드는데 균열이 발생해 난감했죠. 결국 팀원들의 의견을 수렴, 수축을 저감하는 슈퍼콘크리트 배합을 개선해 성공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연구환경이 실패를 용납하지 않아 “당시 실패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후 해외에서 이 공법으로 다리를 건설하면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미국 연방도로청과 아이오와교통국을 방문해 슈퍼콘크리트를 소개하고 기술인증을 받은 후 아이오와주 뷰캐넌카운티에 있는 호크아이교를 180㎫ 슈퍼콘크리트로 지난 2015년 교체했다. 우리 기술로 건설한 미국 최초의 교량이다. 이를 바탕으로 압축강도 180㎫의 세계 최초 슈퍼콘크리트 사장교인 ‘춘천대교’를 2017년 완공해 유럽·미국 기술자들로부터 건설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철근을 거의 쓰지 않고 슈퍼콘크리트로 얇게 곡면으로 시공한 울릉도 힐링스테이코스모스리조트(2017년)도 돋보인다. 세계 최대 지간장(540m)을 갖는 콘크리트 사장교인 고덕대교(2022년 완공)에도 이 기술을 적용한다. ‘울릉도 리조트’와 춘천대교는 미국 연방도로청이 주관한 UHPC 혁신상에서 각각 ‘빌딩’과 ‘인프라’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축사도 돼지와 소의 오물로 인해 부식이 빠르고 고압세척 시 콘크리트가 부서져 배수로가 막히는 문제가 있는데 슈퍼콘크리트를 적용하니 수명이 2배로 늘었다. 도심의 ‘과속방지턱’도 슈퍼콘크리트로 바꾸니 파손이 방지됐다.
김 박사는 “어려움이 생길수록 더 입맛을 다시고 열정으로 무장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슈퍼콘크리트로 남북 잇는 ‘평화의 다리’ 지을 것”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김병석 건설기술연구원 박사
“논문과 특허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활용되는 연구’ ‘공사비를 줄여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연구’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가 공동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9월 수상자로 선정된 김병석(61·사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남북한인프라특별위원장은 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각국이 기술선점을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UHPC(슈퍼콘크리트)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서울대에서 토목공학 학·석·박사를 딴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교량을 최적화해 자동설계하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이날 김병석 박사는 ‘중복연구’ 방지 목적으로 한 분야에서 혁신기술의 장기 연구개발(R&D)이 어려운 풍토를 지적하는 한편 혁신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처음으로 적용하겠다는 곳이 없는 보수적인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세계 최초·최고 기술과 실적을 확보하려면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 연구환경에서는 ‘중복연구’를 금해 이런 길을 걷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며 “역설적으로 ‘중복연구’를 해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슈퍼콘크리트처럼 개발기간이 길고 임팩트가 큰 연구는 같은 분야에서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슈퍼콘크리트는 앞으로 100년, 200년 갈 영역이니까 누가 뭐라고 하든 R&D 과제 발굴을 계속해야 합니다. 물론 연구를 위한 연구는 절대 안 되고요.”
김 박사는 “말로는 ‘팔로어’가 아니라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세계 최초로 슈퍼콘크리트를 적용해보자’고 하면 하나같이 ‘외국 사례가 있느냐’며 채택을 거부했다”고 회고했다. 고민 끝에 건설연 건물 사이에 세계 최초로 슈퍼콘크리트 사장교를 건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국제학술대회에서 항상 세 가지 꿈을 이야기해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UHPC 기술로 세계 최초 사장교를 짓고, 세계 최대 경간장의 콘크리트 교량을 짓겠다’는 꿈은 이뤄졌다”며 “앞으로는 ‘슈퍼콘크리트 기술로 남북을 연결하는 평화의 다리를 짓겠다’고 했고 몇 년 전부터 ‘1㎜ Movement(1㎜ 운동)’를 이야기하며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호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1㎞ 사장교를 지으려면 1,000억원가량 필요한데 세계인들로부터 1㎜ 기부(100달러)를 통해 평화의 다리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한반도인프라포럼’ 운영위원장인 김 박사는 “베트남과 미얀마처럼 북한의 인프라 건설은 북미 관계가 풀리는 때가 오면 국제금융기구와 민간의 자본이 투입되고 건설기술이 결합해 국제입찰로 진행될 것”이라며 “각국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우리 건설사들은 각자 실력은 뛰어나나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해외사업에서 정말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지혜롭게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m